Thursday, July 18, 2019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의 "쿠다라" 는 정말로 "큰 나라" 라는 뜻일까?? (Feat. 쿠다라 나이, 사무라이 어원들)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고 하면 거짓말, 통수, 사기, 위증, 선동, 역사왜곡등을 하는 나라임


자 그럼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쿠다라가 정말로 큰 나라라는 뜻일까??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쿠나라" 는 "큰 나라" 라는 뜻이 아님


자 그럼 쿠다라의 어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살짝 한번 알아보자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구다라) 의 쿠다라

그 쿠다라는 큰 나라 라는 뜻이 아니라 구드래(부여쪽 금강 나루)” 혹은 웅진을고마나라()” 구마나리 등으로 불렀는데 여기에서 유래되어졌음

즉 중국 문헌들에 보면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의 도읍이 "고마(固麻)" 라고 되어있고 일본서기와 일본의 다른 문헌들에서는 고마나라 혹은 고마나루(固麻那羅), 구마나리 혹은 고마나리(久麻那利)” 되어있음

즉 쿠다라는 여기에서 유래되어진 어원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쿠다라 나이(らない)" 라는 일본 말을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것이 아니면 하찮다 라고 해석하고 있움

참 대단함

우리나라 역사 학자들은 알아보지도 않고 막 주장함

고대 일본에서는 를 썼지 ない)” 나이 를 안썼음

ない)” 나이 를 쓴 시기가 바로 에도 시대(1603~1868) 때 일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무라이는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의 싸울아비?? 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 어원도 거기에서 나온 말이 아님

일본의 귀족들이 서로서로 싸울때 보디가드가 필요했는데 이 보디가드를 ()” 로 불렀음

시중들다, 모시다 여기서 나온 말임

그리고 사무라이라는 말은 16세기 쯤에 나온 말임

참고로 싸울아비라는 어원이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에서 쓰였다는 기록들은 전혀 없음

이 싸울아비라는 말은 근대(1960년도때)에 쓰인 말임


결론 : 국수주의는 빙이고 사고는 항상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게 생각하고 판단을 해야 함


번외 :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는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왜국의 쫄따구 나라였음

왜냐면?? 삼국사기, 일본서기, 중국 문헌들에 보면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가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왜국(전라왜구+큐슈왜구)에 매해 수시로 왕자들을 볼모로 보냈고 조공을 바쳤음

그러나 한중일 기록들이에 그 반대로 되어진 기록들은 거의 전혀 없음

그리고 이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와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전라왜+큐슈왜구의 대빵은 짱개 남조 왕조들이였음 <-- 중국 문헌들에 다 나옴

즉 이 두 나라는 짱개 남조 왕조들의 쫄따구 나라들이였다는 것임

왜냐면?? 이 두 나라가 중국의 전쟁들과 난들을 피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이주한 집단들이기 때문임

다시 말해서 중국 남조에서 넘어 온 짬봉들이라는 소리암

짬봉들 오스트로네시아인들(동남이인들)+짱개 한족 혼혈인들 그리고 짱개 한족들등

Tuesday, July 16, 2019

이순신의 명량해전은 정말로 이긴 전투일까?? 그리고 대첩일까?? (feat. 명량해전은 진 전투다)

요즘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중국 이민자 후손인 문 정권이 뜬금없이 이순신의 "명량해전" 을 들먹였음

자 그런데 명량해전은 정말로?? 이긴 전투일까??

이건 예전에 한번 여기에 썼는데 다시 한번 상기를 해 보는 의미에서 이걸 다시 한번 보기로 하자


<명량해전의 양측 기록들>


[명량해전은 1597 9 16일에 일본 해군과 조선 해군과의 사이에 일어난 전투이다.

한국에서는 명량 대첩으로 불리며 이순신이 이끄는 소수의 조선 해군이 다수의 일본 해군을 격파시킨 전투로 유명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순신의 해군이 일본 해군의 선봉 부대를 격파시켰으나 해상권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멀리 후퇴했다.


명량해전 경과 :

이순신 해군이 열세였기 때문에 명량도로 물러났다.

이곳은 진도와 화원 반도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조류가 빠르고 큰 소용돌이 치고 있는 지역이다.

일본 해군 수십 척(조선 측 기록에서는 130여척 혹은 133)이 명량도로 향했다.

다른 전함은 뒤로 빠지고 그(이순신의 함대)가 탄 배 한 척만 일본 해군과 싸웠다.

이 싸움에서 일본해군 제독인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전사했다.

이순신이 의연히 싸우자 뒤로 빠졌던 조선의 전함들이 나서 참전했다.

치열한 전투 중 도도 다카토라가 부상하고 모리 다카마사는 바다에 떨어졌다.

도도 마고하치로와 도도 카게유가 조선 해군을 물리치고 모리 다카마사를 구조했다.

이 해전에서 조선 해군의 손해는 경미했으나 중과부적이라 퇴각했다.

일본 해군은 생소한 수로로 인해 조선 해군을 추격하지 않았다.

다음날에 도도 다카토라와키자카 야스하루 등이 전날의 전장을 둘러보았다.

이때 이순신 해군은 그곳에서 머나먼 외도(신안군 지도읍)에 있었다.

명량해전 이전에 충청도까지 진출했던 일본육군이 그 해전 후에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이 전라도 서해안을 제압시키자 이순신 해군이 북쪽으로 후퇴했다.

이들은 제대로 된 반격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9 19일에는 영광군 앞바다로, 9 21일에는 군산 앞바다로 후퇴했다.

일본 해군은 명량 해전 다음 날에 조선 해군의 근거지인 진도를 점령했다.

그 다음 날에 전라남도 서해안 지역에 진출했다.

이곳에서 육군과 만났다.

일본 육군과 해군이 전라도 전역의 소탕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일본 해군이 명량을 떠난 후인 10 8일에야 이순신 해군이 그곳으로 귀환했다.

본래 근거지는 파괴된 관계로 고금 섬(완도군 고금면)을 새로운 근거지로 삼았다.

이순신 해군이 재건하는 데에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명량해전 평가 :

일본 해군의 선봉대를 격파시킨 이순신 해군이 전라도 북단으로 철수하고 일본 해군은 그의 근거지를 점령하고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전략적으로 볼 때 명량해전은 일본 해군이 승리한 전투였다.

현대 한국에서는 명량해전을 "일본에 대승한 해전"으로 선전하고 있다.

일본 해군의 참가 병력이 군선 133운송선 200척이고 손실이 침몰 31대파 92전사 8000~9000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일본조선 양편의 사료를 하나도 보지 않고 하는 소리이다.

그때 일본 해군의 전체 수효는 도도 다카토라(2,800), 가토 요시아키(2,400), 와키자카 야스하루 (1,200), 구루시마 미치후사(600), 간 미치나가(200) 모두를 합해도 8,000 명이 못되었다.

명량해전에서는 대형 선박인 아타케부네(安宅船)를 쓰지 않고 중형 선박인 세키부네(만 썼다.

이순신 자신이 저술한 "난중일기"에만 의거해도, ‘당파라고 했지 ‘격침시켰다고는 하지 않았다.

일본 측의 전사자 수효는 아예 기록하지 않고 있다.

일본 측의 기록은 차치하고 조선 측 기록(이순신 자신의 기술과 다른 사료)에만 의거해도 명량전투는 조선 해군 12~14척이 일본 전함 30척 혹은 31척을 공격한 후 후퇴한 전투였다.

한국에서 명량해전 전말은 역사 교과서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일본해군을 궤멸시켜그들의 침공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순신이 명량해전 후에 북쪽으로 퇴각했고 이에 일본 해군이 제해권을 장악했다는 사실은 기술하지 않고 있다.

당시 이순신이 전장으로부터 이탈도주하여 일본해군이 무혈로 서해안에 진출했다.

따라서 그가 문책당해야만 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선 정부도 느끼고 있었음은 조선 측 기록을 살펴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 
조선 정부가 명량에서 승리?? 거둔 이순신에게 아무런 포상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이순신의 조선수군이 승리한 해전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볼때 일본해군의 승리였음]


참고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작은 승리" 라고 나옴

그러나 이걸 믿어야 할까??

이순신 난중일기에서는 승리?? 라는 말은 나오지도 안는데 말이지

그리고  <난중일기> 에 나오는 명량해전의 전투 내용에는 작은 배 세키부네 31척을 당파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도망을 쳤다라고 나옴

이것으로 일본군이 서해안에 진입을 못하고 많은 수가 죽었다라고 선조한테 보고를 했는데 난중일기에는 일본군 죽은 수가 전혀 나오지도 않고 이순신 바램과는 달리 일본군은 다음날 바로 서해안에 입성을 함

이순신의 부산 방화 사건 거짓 징계와 정유재란 발발 전 막으라고 했던 가토의 적은 수의 병력을 간만 보고 무사통과시켜 준 이순신을 선조가 과연 믿었을까??


일본측에서는 "일본군의 승리"

왜냐면?? 이순신이 작은 중형배인 세키부네 31척만 당파를 하고 북쪽으로 계속해서 후퇴 도망치는 바람에 다음 날에 진도를 입성을 해 진도를 초토화 시켰으며 그 다음날에 서해안에 입성을 해 전라도 전역을 초토화 시켰기 때문임


중국측 기록에서는 명량해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않나옴


그리고 패한 전투인 명량해전을 우리나라에서는 명량 대첩?? 이라고 하는데 대첩이면 아주 크게 이긴 전투인데 왜?? 이순신의 함정들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후퇴 도망을 쳤을까??

한마디로 대첩?? 도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뻥을 쳤던 것임


자 그러면 패한 전투인 명량해전 다음에 일어난 울산성 1 2차 전투순천 왜교성 전투사천성 전투등은 어떻해 되었을까??

그리고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발발전 이순신이 가토 기요마사의 적은 병력을 무사통과 시켜 주는 바람에 전라도 지역이 어떻해 되었을까??

그리고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발발전 이순신이 참전한 녹둔도 참변 혹은 전투에서는 어떻해 되었을까??


그리고 명량해전에 대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들과 다른 역사책들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음

 우리나라에서는 패한 전투인 명량해전에서 일본놈들의 죽은 수를 이렇게 써 놓았음

<일본 해군의 참가 병력이 군선 133운송선 200척이고 손실이 침몰 31대파 92전사 8000~9000

혹은

전선 100여척이상 완파이외 전선 다수 파괴도도 다카토라 부상구루시마 미치후사 전사칸 마타시로 마사케가 전사최소 8000여 명 전사 추정>

<-- 이렇게 말이지

그런데 정사(초판) <조선왕조실록 <난중일기에 이 내용들이 나올까?? 는 각자 한번 찾아보길

참고로 여기서는 일본측 기록은 뺐음

Monday, July 15, 2019

어릴때 세뇌되어진 지식들과 개념들을 갑자기 바꾸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임 (Feat. 코페르니쿠스의 (불안정한) 지동설 주장)

왜곡 되어진 역사들을 올바른 역사들로 수용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

먼저 우리나라애서 배워온 역사 지식들로는 백제(쿠다라)와 고구려가 한민족 역사들이라고 배워왔음

그러나 요즘에 고고학과 과학이 발달하는 바람에 이 통설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음

그리고 국내 학자들이 반신반의 했던 중국 문헌들과 일본서기의 내용들이 고고학과 고인골 유전자의 발달로 인해 점점 신뢰성이 맞아 떨어저가고 있다는 것임

즉 요즘 중국 문헌들과 일본서기가 신뢰성이 아주 높아지고 있다는 것임

예로 <일본서기> 를 보면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왕의 호칭을 매금(寐錦) 왕라고 기록해 두었는데 이것이 울진 봉평리 신라비 중원(충주) 고구려비” "호태왕비" 등에 다 나온다는 것임

참고로 "매금" 의 호칭은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호칭임

그리고 삼국지, 후한서, 양서, 일본서기에 보면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왜국이 일본 큐슈에만 있었는게 아니라 한반도 전라도 전남 지역에도 존재했었다는 기록들이 다나오는데 지금 전라도에서 일본식 전방후원분들과 옹관묘(독무덤)들과 왜색짙은 유물들과 일본인들과 유전자가 똑같다고 판명이 난 고인골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면서 위에 열거한 사서들의 신뢰성이 더욱 더 높아졌음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와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도 마찬가지임

중국 문헌들에 보면 이 두 나라가 중국과 같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기록을 해두었음

예로 유물들, 무덤 양식들, 문화, 풍습, 언어, 의복, 음식문화

자 그런데 ?? 한국 학자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걸 수용 못 할가는 예전 유럽의 경우에서 살짝 엿볼 수가 있음


자 그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에 대해서 살짝 한번 알아보자


<코페르니쿠스의 불안정한 자동설 주장>

예전 서양에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불완전한 지동설)을 주장했을때 누가 이 설을 그렇게 반대했을까??

지금 보통 사람들은 천주교 성직자들이 반대했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소수였음

이 설을 엄청나게 반대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보수적인 그 당시 학자들이였음

왜냐면?? 그 당시 천동설(프톨레마이오스)에서 지동설로 바뀌게 되면 사회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이 "보수적인 학자들" 이 이 지동설을 엄청나게 반대했음

그리고 이 보수적인 학자들이 천주교 성직자들한테 코페르니쿠스를 좀 어떻해 처리해봐라 라고 말 했던 것임

코페르니쿠스 말고도 지동설을 주장했던 다른 수많은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음


자 무슨 말을 할려는지 알겠음??

결론 : 어릴때 세뇌되어진 지식들과 개념들을 갑자기 바꾸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임

그러나 언젠가 그 세뇌되어진 지식들과 개념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바뀐다는 것임

그런데 요즘은 고고학 특히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더더욱 빠르게 바뀌어 진다는 것임

Saturday, July 13, 2019

환빠들과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와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의 신봉자들에 대한 나의 소견

<환단고기 신봉자들인 환빠들과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의 신봉자들에 대한 나의 소견 (Feat.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전라왜구+큐슈왜구)>

우리나라내 환빠가 왜?? 이렇게 많은지 나는 이해함

한민족 역사상 최강의 전투민족이였던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가 망하고 고려 초중?? 까지 그래도 그럭저럭 좀 나가다가 고려 중 후반기때 강력한 몽골 군대의 침략으로 인해서 고려가 몽골의 속국 식민지가 되어버렸음

참고로 신라의 조상이 흉노족인데 몽골도 지들 조상을 흉노족이라고 함

하여튼 몽골 속국 식민지가 무려 약 80년정도 갔었음

그런데 신라 시대때는 어느 나라들이 신라를 감히 쳐들어 올 생각을 못했음

심지어 옆나라 일본놈들은 얼마나 신라가 싫고 괴롭힘(예로 신라구) 을 당했으면 말갈족이 주계층이였던 대진국(발해) 과 합세해서 신라를 쳐들어 올려고 했는데 신라의 강한 군사력과 일본의 국내 서정들과 대진국(발해) 가 거절하는 바람에 흐지부지 되어버렸음

참고로 일통 삼한을 한 신라를 일본이 다시 쳐들어 올려고 한 계기가 신라의 김태렴 이라는 가짜 사신과 그 일행들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음

하여튼 예전 신라한테 왜놈들이 엄청나게 개박살이 났다는 것도 있고 해서...

그런데 허울뿐이였던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의 이름만 사칭했던 고려가 세워지고부터 점점 나라가 기울어 졌고 심지어 나중에는 약 80년간 몽골 속국 식민지 신세가 되어버렸음

그리고 이 허울뿐이였던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씨 조선을 세운 중국 출신 이성계(아기바토르) 는 아에 처음부터 한족 명나라한테 속국 식민지룰 자처해 버렸음

?? 조선이라는 국명도 짱개 한족 명나라 주원장한테 세계최초로 하사받은건데 말 다했지

이렇게 500년간 중국 속국 식민지를 자처하고 있다가 이제 좀 해방 되는가 싶더니 일본한테 또 먹혀버렸음

36년간

고로 도합 약 616년간 속국 식민지를 당했음

이러니 한국인??(아마 한국내 한국말 잘 하는 45프로 중국 이민자 후손놈들이겠지) 들얼마나 억압받고 살았겠음??

그래서 요즘 좀 먹고 사니 이런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서 찾고 찾고 찾은게 환단고기와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22담로와 호태왕, 장수왕때의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임

우리도 이렇게 남의 땅 쳐들어가서 식민지?? 경영을 했다

그리고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 호태왕 만세 야 신난다

그리고 이걸 막 퍼날랐음

그런데 사람들은 한번 거짓말은 잘 안믿지만 계속 되풀이하면 대중들은 이걸 믿어버림

그러나 중국 문헌들을 보면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와 짱개 선비족 고구려는 매해 수시로 짱개 왕조들한테 조공을 바쳤음

심지어 그렇게 강했다던(고구려빠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심리임) 호태왕, 장수왕 시절때도 매해 수시로 짱개 왕조들한테 조공을 바쳤음

그리고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는 대방땅(현 황해도)에 처음 도읍을 연 다음 처음부터 중국에 쭉 조공을 했고 생구(노예)들을 바쳤고 책봉을 요청했음

하여튼 환단고기와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22담로등을 한중일 역사 학자들과 다른 서양 서방권에서 아무도 인정을 안해줌

그리고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는 벌써 중국사가 되어버렸고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도 조만간 100프로 중국사가 될 것이라는 것임


中國高句麗的歷史(01/18) - 중국 고구려의 역사 - History of Gaogouli, China. (Goguryeo)


미의회 고구려는 중국사 보고서 작성


고구려에 이어 백제까지 중국사에 편입했다 (2017.09.13)


"동북공정 이후  백제사 연구 확대·구체화" (2018.07.17)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16/0200000000AKR20180716156800005.HTML


또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도 호태왕, 장수왕 빼고는 그렇게 강대국?? 이라 말 할 수가 없는 그저 그런 왕조였음

그리고 허울뿐이였던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 이름만 사칭했던 고려도 마찬가지였고 지구 역사상 최약체 거지 노예국가 짱개 괴뢰국 이씨 조선도 마찬가지였음

중국 속국 식민지도 모자라서 옆나라 일본한테도 주터지고 신라후예가 만주로 넘어가서 성질이 비슷한 반유목민들인 여진족들을 규합해서 세운 후금 청나라한테 또 주터지니 신격화 되어진 영웅들이 필요했음

일제 식민지가 되고 나서 더욱 더 신격화 되어진 인물들이 필요했었음

그게 바로 과대 포장 되어진 이순신, 세종, 이이, 이황등이였음

그런데 이걸 엄청 과대 포장 해 주고 왜곡하고 띄워주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내 한국말 잘 하는 45프로정도 되는 중국 이민자 후손들임


신라의 적통을 이어받은 핏줄들은 훈족(흉노), 신라, 가야, 부여, 진국, 삼한, 금나라, 청나라와 아메노 히보코(이즈모)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을 안씀

유독 한국내 한국말 잘 하는 45프로 정도되는 중국 이민자 후손들이 항상 열불을 내지

그리고 한국내 신라 왕조를 극도로 싫어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 이민자 후손놈들임

아 또 있음

신라한테 몰살당했던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슈왜구들...

하여튼 그런데 왜?? 한국내 45프로정도 되는 중국 이민자들과 전라도가 신라를 싫어하냐고??

왜냐면?? 핏줄이 안땡긴다는 것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임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놈들이 세운 전라왜구+큐슈왜구들이 극도로 신라와 경상도(신라의 수도가 경상도 경주에 있다고)를 싫어함

왜냐면??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한테 열나게 주터졌으니까

특히 전라도에 살던 전라왜구

그래서 그런지 경상도와 신라 때문에 전라왜구들이 항상 서러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리고 일본 즉 일본의 주계층들인 왜인들도 신라를 싫어하는 이유가 한반도에서 토착해 살고 있던 같은 핏줄의 왜인들이 신라에 의해 몰살을 당하는 바람에 한반도 전라도에서 축출이 되어졌기 때문에 신라를 극도로 싫어하는 것임

참고로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왜인들은 그 당시 유럽의 바이킹 들이라고 생각하면 됨

바이킹 즉 노로만족들이 여러 나라들을 뺘엇어서 나라를 세웠는데 왜인들도 마찬가지였음

하여튼 그 서쪽 지역은 역사적으로 볼때(4세기때부터 현재까지) 무지막지하게 학살을 많이 당한 땅이였음

심지어 같은 동족인 일본한테도 열나게 학살을 당했었음

예로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 의 전라도 학살 사건(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개전 전후) 무려 15만명 정도가 학살을 당했음

아 그리고 신라계 김일성(김성주)도 전라도 민간일들을 학살을 했었고 안중근도 동학 농민 난을 진압하면서 전라도 사람들을 학살을 했었고 짱개 이민자 후손인 선조도 기축옥사(정여립의 난) 로 엄청 많은 전라도 사람들(약 2000명정도) 을 죽였음등

이래저래 맨날천날 주터지니 남은건 악 밖에 남은게 없다는 것임

하여튼 환빠와 22담로와 호태왕등의 신격화는 다른 나라들한테 억압받은 것들을 풀려고 하는 심리로 탄생되어진 것이지

특히 한국내 한국말 잘 하는 45프로 정도되는 짱개 이민자 후손놈들에 의해서

참고로 그 당시 동맹을 안한 나라가 없었음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와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슈왜구는 항상 붙어다니며 짱개 남조 왕조들에게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지금 우리가 먹고 있으니 우리를 칭찬해 주세요 라고 충성을 맹세하고 조공을 갖다 바친 놈들임

참고로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는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큐슈왜구의 쫄따구 나라였고 이 두나라는 짱개 남조 왕조들의 쫄따구 나라들이였음삼국사기, 일본서기, 중국 문헌들에 다 나옴

그리고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도 돌궐?? 말갈과 동맹

그런데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훈족(흉노) 가야 부여 진국 삼한 금나라 청나라 그리고 아메노 히보코(이즈모) 포함) 는 누구와 동맹을 하면 안됨??

내가하면 무조건 로맨스고 남이하면 무조건 불륜임??

하여튼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훈족(흉노) 가야 부여 진국 삼한 금나라 청나라 그리고 아메노 히보코(이즈모) 포함) 가 그렇게 싫으면 한국말(신라어)을 버리고 중국말, 일본말을 쓰면 됨

참고로 지금 한국내 한국말 잘 하는 45프로 정도 되는 짱개 이민자 후손들이 지금 한국어가 신라어(타밀어(드라비다어)) 가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고 있음


하여간 이것을 명심하기 바람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 로마 속담인 동시에 영국 해군의 표어임>

평화는 말로만 되는게 아님

일본왕은 중국인이다(feat.오태백과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문신 풍습)

[중국 문헌인 진서, 양서, 북사 왜국전에 보면 일본의 시조가 오태백이며 왜인들의 풍습으로는 문신 풍습이 있다라고 나온다] http://contents.nahf.or.kr/id/jo.k_0005_0097_0020_0010 왜인(倭人)은 대방(帶方)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