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1, 2021

삼한 즉 한민족의 모태 나라는 "진국' 이라는 나라지 중국사인 (고) 조선이 아니다 (feat. <후한서> 동이열전 한민족 내용)

[삼한의 모태 나라는 진국(辰國)이다 (feat. 중국 문헌인 <후한서> 동이열전 한민족 내용)]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totalCount=0&prevPage=0&prevLimit=&itemId=jo&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jo_003r_0010_0070_0020&position=-1

○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大者萬餘戶, 小者數千家, 各在山海閒, 地合方四千餘里, 東西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해석 :

馬韓(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이 있으며, 그 북쪽은 樂浪(낙랑), 남쪽은 倭()와 接()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이 있으며, 그 북쪽은 濊貊(에맥)과 接()하여 있다.

弁辰(변진)은 辰韓(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이 있으며, 그 남쪽은 倭()와 接()해 있다.

모두 78개 나라 伯濟(백제)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萬餘戶(만여호), 작은 나라는 數千家(수천가)인데,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어서 전체 국토의 넓이가 사방 4천여리나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辰國(진국)이다.

마한이 [韓族(한족) 중에서]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王()을 세워 辰王(진왕)으로 삼아 目支國(목지국)에 도읍하여 전체 三韓(삼한) 지역의 王으로 군림하는데, [三韓(삼한)] 諸國王(제국왕)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 <후한서> 동이열전 한민족 내용 중에


<-- 중국사인 () 조선이라는 말은 아에 나오지를 안는다

참고로 이 조선이라는 멍칭이 처음 갑자기 등장한 시기가 바로 허울뿐이였던 고려시대때 일임

허울뿐이였던 고려가 몽골의 약 90년간 속국?? 식민지가 막 시작이 될때 일임


일제 시대 동안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자원 입대하려는 수가 무려 약 80만명(1938년~1943년) 이었다 (feat. 조선적 일본군인 - <위키백과> 출저)

[일제 시대때 일본군에 자원 입대할려는 조선인들이 무려 약 80만명 정도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A0%81_%EC%9D%BC%EB%B3%B8%EA%B5%B0%EC%9D%B8#%EA%B0%9C%EC%9A%94

개요

(중략)

일본 통치 하에서 군무원으로 들어가 전몰자가 된 한반도 출신자 가운데 조선인, 일본군을 포함 약 2 1000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A0%81_%EC%9D%BC%EB%B3%B8%EA%B5%B0%EC%9D%B8#%EB%AA%A8%EC%A7%91

조선적 일본군인

연도     지원자       입소자        선발율    지원배수

1938 2946         406          16.2%      7.3

1939 12,348      613            4.9%    20.2

1940 84,443     3,060          3.6%    27.6

1941 144,743   3,208         2.2%     45.1

1942 254,273   4,077         1.6%     62.4

1943 303,394   6,000         1.9%     50.6


<한국 현대 정부에서 친일 청산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제국 시절 일본제국군 조선인 특별 지원병제에 1938년부터 1943년까지 무려 80 2천명이나 지원했기 때문이다 팩트>

일본을 도운 부역국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음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도 우리나라는 참석을 못 했음


명량해전은 정말로?? 이긴 전투일까?? (feat. 일본측이 분석한 동영상)

[일본측의 명량해전 분석]

鳴梁海【朝鮮出兵】 日本水軍 vs 朝鮮水軍。<字幕付き>

https://youtu.be/Pqki39d9fsk

<-- 일본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있음

일본측 기록들에는 작은 세키부네(30~40명 정도가 탈수 있는 함선) 수십척이 한국판 카미카제인 울돌목을 돌진해서 일본군들이 수십 명 즉 경미(본 학자들이 일본측 사료 근거를 바탕으로 새롭게 밝혀내고 있음그러나 일본측 죽은 수는 불명임)하게 죽었다라고 하고 이순신은 수십척을 당파하고 바로 튄 후 나머지 세키부네들이 조선 수군을 무려 170키로나 추적을 하고 일본군들의 다른 대규모 큰 배들은 서해안으로 계속해서 돌진을 해 서해안에 입성을 해 서해안과 전라도 전 지역을 초토화 시켰다고 함

참고로 이순신 지가 쓴 난중일기에도 계속해서 도망을 쳤다라고 나옴

그리고 일본이 계속해서 보급을 하고 해상권을 장악을 했다라고 함

그래서 일본의 서해안과 전라도 전역의 초토화라는 목표 달성을 성공했다라고 함

위에 말했듯이 이순신의 판옥선과 다른 판옥선들은 일본의 추적으로 인해 무려 170키로나 도망을 쳤다라고 함

그리고 조선측 일본측 기록들을 바탕으로 명량해전때 12~13척 퐌옥선 말고 위장선, 초탐선의 배들이 32~100척 이나 있었다고 함

즉 긁어 모을 배들은 다 긁어 모은 셈임

참고로 유럽은 역사를 공동 집필을 하고 있음

예가 100년 전쟁도 영국과 프랑스는 공동 집필을 함

자 그래서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도 한중일 공동 집필을 해야 하는 것임


일본왕은 중국인이다(feat.오태백과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문신 풍습)

[중국 문헌인 진서, 양서, 북사 왜국전에 보면 일본의 시조가 오태백이며 왜인들의 풍습으로는 문신 풍습이 있다라고 나온다] http://contents.nahf.or.kr/id/jo.k_0005_0097_0020_0010 왜인(倭人)은 대방(帶方)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