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21, 2018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와 왜국(큐슈왜구+전라왜구 임나) 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안함

경기 하남서 발견된백제 최고위층 석실 무덤’…그 안에는 (2018.04.22)


위에 뉴스에서 이런 글들이 나옴

<무덤이 발견된 곳은 한성도읍기 백제 왕성?? 이 확실시?? 되는 서울 풍납토성(사적 제11)과 약 4km 떨어진 곳이다.   

22일 하남시와 하남역사박물관에 따르면 하남 감일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부지에서
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 돌방무덤) 50기가 발견됐다. 

무덤은 4세기 중반에서 5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된 부장품은 (풍납토성에서 나오는 토기와 매우 흡사한직구광견호(直口廣肩壺·아가리가 곧고 어깨가 넓은 항아리) 비롯해 중국에서 제작 계수호(鷄首壺·닭머리가 달린 항아리) 사각뿔에 동그란 구멍을 뚫은 같은 부뚜막 토기 2점이다.>

<-- <풍납토성에서 나오는 토기와 매우 흡사한> – 다른 뉴스에서는 이렇게 

참고로 풍납토성에서 나온 유물들 거의 100프로가 중국 남조 시대 유물들과 똑같


<그는 "청자는 당시 중국에서만 만들 수 있었고, 부뚜막형 토기를 무덤에 묻는 풍습은 중국에 있었다" "백제가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 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덧붙였다.>

<-- 땅만 팟다고 하면 중국 남조 시대 유물들만 수두룩 쏟아져 나오는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

그리고 "부뚜막형 토기를 무덤에 묻는 풍습은 중국에 있었다" 라고 말해놓고 이걸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 한 증거?? 라고 말하는 우리나라 역사 학자들

아 풍습도 중국과 똑같은데 이게 교류라고??

그럼 중국인들 입장해서는 어떻해 해석하고 생각을 할까??


10개 학회 "공주 '대통'명 기와 출토지 보존해야" (2018-04-30)


위에 뉴스에서 이런 글들이 나옴

<학계는 대통사를 백제 성왕(재위 523554)이 중국 양나라 무제를 위해 축조했다는 사찰로 본다.

나아가 세계유산인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과 함께 웅진도읍기(475538) 핵심 유적으로도 평가한다.>

<대통은 중국 양나라 무제가 527년에서 529년 사이에 사용한 연호이며, 일제강점기 반죽동 당간지주 일대 조사에서 대통명 기와가 나온 바 있다.

대통사터에 있던 커다란 석(石槽·사찰에서 연꽃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하는 돌그릇) 2점은 1940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참고로 대통(大通)은 중국 양() 무제(武帝)의 세 번째 연호로써 527 3월에서 529년 9월까지 2 7개월 동안 사용한 연호임

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사찰까지 세우는 벡제(쿠다라)

이것은 중국 남조 왕조들에 대한 대단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고 백제(쿠다라)가 중국 남조에서 넘어 온 이민자들이 세운 왕조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임


강진에서 발견된 ‘전방후원분’ (2013.02.22)


위에 뉴스에서 이런 글들이 나옴

<그동안 전남 영암과 해남 등 영산강 유역에서만 발견된 고대 일본의 무덤양식인 ‘전방후원분’이 강진군에서도 발견되어 학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란 앞쪽은 사각형, 뒤쪽은 원형의 분묘가 맞붙어 있는 형태의 독특한 분묘양식으로, 특히 일본의 고분시대(古墳時代) 4세기부터 6세기에 성행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분묘양식인 전방후원분은 그동안 고창 칠암리, 담양 고성리·성월리, 함평 장고산·신덕·표산, 광주 월계동·쌍암동·명화동, 영암 자라봉, 해남 용두리·조산·장고산 등 모 13기만이 발견되었는데, 이번에 강진에서도 발견돼 우리나라 고대사는 물론 고고학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일본의 독특한 분묘양식인 전방후원분이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어오래전부터 학계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지배.영향 관계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 학술적인 입장과 논쟁에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우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분묘 형태가 한반도 남부의 활발했던 대외교류?? 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 우리나라 학계 관계자들의 특징은 일본식 전방후원분들과 옹관묘들이 전남에서 수두룩하게 발견되어졌고 지금도 발견되어지고 있는데도 항상 대외교류?? 라고 말하고 있음


[한국사 Live] 한반도 남부 倭人 무덤의 정체는 (2016.04.06)


위에 뉴스에서 이런 글들이 나옴

<2012 11월 고흥 풍양면 야막고분을 발굴하던 나주문화재연구소는 매우 낯선 형태의 고대 무덤을 찾아냈다.

무덤 위에 돌을 깔고 봉분을 덮은 이른바 `즙석(葺石)` 방식이다

이 연구소 권택장 학예연구사는 "3세기 후반~7세기 말 왜의 고훈(古墳)시대의 보편적 무"이라고 정의했다.

()계 무덤이 왜 이곳에서 발견된 것일까.

단순한 무덤양식만 갖고 특정 형식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무덤 속에서 나온 부장품도 중요한 평가요소다.

야막고분에서는 실제 왜색이 짙은 갑옷·투구와 검, 대도, 창 등 무기류가 다량 출토됐다.

연구소 측은 갑옷과 투구에 대해 "형식으로 미뤄 제작 시기를 5세기 전반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출토사례를 비교하면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고 수량 또한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분석했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남부에서 이 같은 모양의 왜계 분묘가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야막고분을 포함해 현재까지 확인된 왜계고분은 총 25.

영산강 일대에서는 고창 칠암리, 담양 고성리·성월리, 함평 장고산·신덕·표산, 광주 월계동·쌍암동·명화동, 영암 자라봉, 해남 용두리·조산·장고산 등 6세기 초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13기가 나왔다

전방후원분은 원형과 사각형의 분구가 붙은 형태로 고훈시대 지배계층의 전형적인 분묘양식이다.

무덤에서 환구대도, 협갑(脇甲·갑옷) 등 일본열도산 부장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때 고급무사들이 피장자인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왜계는 같은 시기 공주 단지리·안영리, 부여 능산리 등 충청권에서도 3기가 발굴됐고 경
남 고성군 송학, 의령군 경산리·운곡리, 사천시 신진리, 거제시 장목, 창녕균 송현동 등 대가야권에서도 6기가 출토됐다.

신안 배널리, 고흥 안동·야막 등 3기는 5세기 초 만들어진 묘다

이들 무덤은 영산강 일대의 전방후원분과는 달리 단순히 무덤 표면에 돌을 쌓거나 내부에 요석(腰石)을 설치하고 붉게 채색했다.

전방후원분에 비해 피장자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미천한 중·하위층 무사의 무덤으로 짐작된다.

5세기에는 백제가 아직 한반도 남단까지는 세력을 미치지 못했다는게 주류 학계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25기의 왜계무덤은 4기 후반 일본 신공황후가 한반도 남부를 정벌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라는 말인가.>

<-- 그리고 뒤에 나오는 내용들은 전남에서 발견되어지는 일본식 전방후원분들과 옹관묘들이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의 용병들 즉 용병들의 무덤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용병?? 들의 무덤들이 고구려 신라 무덤들과 맘먹는 수준임

이에 비해 백제(쿠다라)의 무덤들은 용병?? 의 무덤들보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데...

그리고 ?? 정부와 전라도에서 전남에서 발견되어지는 왜색짙은 무덤들의 공개를 꺼려할까??

왜?? 우리나라 학자들은 이 곳의 연구 조사를 꺼려하는 것일까??

전라도와 정부는 뭐가 두려운 것일까??


<자 그럼 다시 한번 중국 문헌들에 기록되어져 있는 내용들을 한번 살펴보자>

한(韓)은 대방(帶方) 남쪽에 있고 동서간으로 바다에 막혀 있다.

남쪽으로 왜(倭)와 접하고 사방 4천리다.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세 종류가 있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韓)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진(弁辰)의 3 종(種)이 있다.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개 국이 있다.

북쪽으로 낙랑, 남쪽으로 왜(倭)와 접한다.

- <후한서> 동이열전


변진(弁辰)은 진한(辰韓)과 잡거하고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 거처는 진한과 같다.

언어와법속이 서로 비슷한데 귀신에 제사 지내는 것은 다른 점이 있고, 부엌을 문의 서쪽에 둔다.

(변진) 독로국은 왜(倭)와 접한다.

- <삼국지> 위서 오한선비동이전


변진(弁辰)은 진한과 잡거하는데 성곽(城郭), 의복(衣服)이 모두 같고 언어와 풍속에 다른점이 있다.

그 사람들의 형체가 모두 장대(長大)하며 머릿결이 곱고 의복이 청결한데 형법은 엄준(嚴峻)하다.

그 나라가 왜(倭)와 가까워서 문신한 자가 상당히 많다.

- <후한서> 동이열전


<… (중략) 그 나라 가까이에 倭(왜)가 있어서, 文身(문신)한 사람들도 꽤 있다… (후략)>

- <양서> 백제(쿠다라) 내용 중에


그리고 중국 문헌 <삼국지> 와 <후한서> 의 내용들을 보면 "변진(인접해 있는 진한도 포함)에는 철(鐵)이 산출되고 예(濊), 왜(倭), 마한(馬韓)에서 모두 와서 사 간다." 라고 되어 있음


우리나라 역사 학자들은 중국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왜국(큐슈왜구+전라왜구 임나) 의 내용들이 한중일 어느 문헌들에도 안나온다고 하지만 저렇게 기록되어져 있음

심지어 <일본서기> 에도 다 나옴

또 <삼국사기> 에도 신라가 초창기때부터 왜나라와 싸우는 기록들이 계속 나옴
그런데 김부식이가 이 왜놈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 줄은 몰랐다는 것임

하여간 그런데 중국 문헌들과 일본서기등에도 다 기록되어져 있고 지금 고고학적으로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는데도 왜?? 우리나라 역사 학자들은 자꾸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Sunday, May 20, 2018

중국에서 유래되어진 사신(四神)과 삼족오(三足烏)가 나타나는 왕조들 - 고구려, 백제(쿠다라), 왜국(큐슈왜구+전라왜구 임나)

사신(四神)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전주작(前朱雀), 후현무(後玄武)는 중국에서부터 유래가 되어진 것임

한마디로 중국의 오행(五行)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

그런데 이 사신이 나타나는 왕조들이 한반도에서는 딱 두 왕조들이 있음

바로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와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임

중국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왜국(큐슈왜구+전라왜구 임나) 특히 전라왜구 고분군들에도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가 없음

왜냐면??  전라도 영산강 일대들과 다른 전남 일대들에서 수두룩하게 발견되어진 일본식 전방후원분들과 옹관묘들의 내부들을 정부와 전라도에서 거의 공개를 안하고 있기 때문임

하여간 그런데 일본에서도 사신도가 나타남


중국에서 또한 유래가 되어진 삼족오(三足烏)도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남

그리고 일본에서도 나타나는데 지금 일본의 축구 앰블럼이 바로 삼족오 문양

 일본 왕이 즉위할때 입는 곤룡포의 왼쪽 어깨에는 삼족오가 수놓아져 있고 일본의 중앙정보대와 중부방면정보대도 삼족오 문양을 사용하고 있음


고구려 고분 <강서대묘> 사신도 - 청룡





백제(쿠다라) 공주 송산리 6호분 사신도 - 현무, 백호

                                         


백제(쿠다라) 부여 능산리 동하총 고분군의 사신도





일본 아스카 다카마쓰(다카마쯔즈카) 고분군과 기토라 고분군의 사신도



고구려 벽화에 그려져 있는 삼족오


일본 축구 앰블럼 - 삼족오
                                                       



일본 왕이 즉위할때 입는 옷의 왼쪽 어깨에 수놓아져 있는 삼족오

일본왕은 중국인이다(feat.오태백과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문신 풍습)

[중국 문헌인 진서, 양서, 북사 왜국전에 보면 일본의 시조가 오태백이며 왜인들의 풍습으로는 문신 풍습이 있다라고 나온다] http://contents.nahf.or.kr/id/jo.k_0005_0097_0020_0010 왜인(倭人)은 대방(帶方)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