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삼국유사> 에 따르면 짱개 남조 백제(구다라)의 시조가 온조, 비류로 나옴
특히 온조
그러나 중국 문헌들에는 온조, 비류는 아에 나오지도 안음
참고로 사서, 문헌이 편찬되어진 시기 - <북사> <수서>
>>>>>넘사벽>>>>> <삼국사기>
자 그럼 중국 문헌들에 나오는 짱개 남조 백제(구다라)이 시조에 대해서 살짝 한번 알아보자
東明之後有仇台, 篤於仁信, 始立國于帶方故地. 漢 遼東太守公孫度以女妻之, 遂爲東夷强國. 初以百家濟, 因號百濟.
- <北史> 列傳
해석 :
<東明(동명)의 후손에 仇台(구태)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信義(신의)가 두터웠다.
[그가] 처음으로 帶方(대방–현 황해도)에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漢(한)의 遼東太守(요동태수) 公孫度(공손도)는 딸을 [仇台(구태)에게]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東夷(동이) 중에서 强國(강국)이 되었다.
당초에(처음에 혹은 본래) 百家(백가)가 건너 왔다(濟–제)고 해서 [나라 이름을] 百濟(백제)라고 불렀다.>
- <북사> 열전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내용 중에
다른 중국 문헌인 <수서>
에는 바로 위 뒤에 내용들에 이런 기록이 더 있음
... (중략) 初以百家濟海, 因號百濟. 歷十餘代, 代臣中國, 前史載之詳矣. 開皇初, 其王餘昌遣使貢方物, 拜昌爲上開府•帶方郡公•百濟王.
- <隋書> 東夷列傳
해석 :
<... (중략) 당초에(처음에 혹은 본래) 百家(백제)가 바다를 건너 왔다(濟-제)고 해서 [나라 이름을] 百濟(백제)라 불렀다.
[이때부터] 십여대 동안
대대로 中國(중국)의 신하 노릇을 하였는데, 前史(전사)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開皇(개황-581년~600년) 초에
그 나라의 王 餘昌(왕 여창-위덕왕)이 使臣(사신)을 보내어方物(방물)을 바치니, 昌(창)을 上開府 帶方郡公 百濟王(상개부 대방군공 백제왕)으로
삼았다(혹은 벼슬을 주다).>
- <수서> 동이열전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내용 중에
자 그럼 위에 내용들을 분석을 한번 해 보면
중국 문헌들에는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의 시조가 "구태"
라고 나옴
온조, 비류는 아에 나오지도 않음
그리고 한나라 태수 공손도의 딸과 결혼한 구태라는 인물이 "백가" 를 거느리고 바다를건너 왔다고 해서 국호를 "백제" 라고 불렀다고 나옴
또 중국 남조 양나라 <양직공도> 에서처럼 대대로 중국의 신하 노릇을 했다고 나옴
당연한 것임
백제가 중국 한족 이민자들이 건너와서 세운 왕조니까
그리고 백제왕을 "상개부 대방군공" 으로 삼았다고 나옴
왜냐면??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의 처음 도읍지가 바로 대방군(현 황해도)이였으니까
참고로 그 대방군(현 황해도)에는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전라왜구+큐슈왜구도 넘어와서 살고 있었음
왜냐면?? 황해도(대방군)에도 왜인들의 전형적인 무덤인 "옹관묘(독무덤)" 들이 꽤 좀 발견이 되어졌기 때문임
자 그럼 결론은 이것임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의
시조는 "구태" 이고 "대방군(현 황해도)" 이 백제(구다라)의 첫 도읍지다
그리고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는 중국에서 넘어 온 이민자들이다
참고로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지역들에서 발견이 되어지고 있는 유물들과 무덤 양식들이 거의 100프로 짱개 것들과 똑같음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는 정말로?? 한민족 왕조가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