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前漢)을
무너뜨리고 왕이 된 신(新)나라 왕망(王莽)이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의 군사들을 징발해서 흉노(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의 전신)를 치려했지만 반발이 있자 엄우로 하여금 그 수장인 구려후(句驪侯) 추(騶)를 죽이게 했고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麗)라고
하고 그 우두머리 또한 하구려후(下句麗侯)로 낮추어 불렀음
여기서 추(騶) 는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 추모왕을 뜻함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부하 장수가 죽었다라고 해석했음
어쨌거나 최고 위에 수장 한명 죽음
참고로 왕망하고 투후 김일제 후손들(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 김씨 왕족의 최고 조상)하고는 깊은 연관성이 있음
위(魏)나라의
관구검(毌丘儉)은
고구려가 모반을 하자 고구려의 수도인 환도성(한사군의 하나인 현도군의 사투리)을 함락시키고 현도태수(玄菟太守) 왕기(王頎)를 보내 남옥저 북옥저까지 동천왕(東川王)을
추격 쫓아갔음
그리고 그 치적을 돌에 새겼다는 기록이 전해짐
그런데 남옥저 북옥저가 어디일까??
지금의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인근 지역임
고국원왕(故國原王)때 모용황(慕容皝)의 모용 선비족들이 고구려를 대거 침공해 부왕 미천왕(美川王)과 선왕들의 무덤들이 파헤쳐지고 그 시신까지 가지고 갔으며 고국원왕의 어미니(모후 주씨(周氏))와 부인과 자식들까지 포로로 잡혀갔음
그리고 고국원왕은 혈혈단신으로 홀로 도망을 쳤음
고국원왕이 미천왕의 시신과 모후와 부인과 자식들을 돌려 받기 위해서 전연에 신하의
예를 갗추고 조공을 여러번 하고 간청도 여러번 해서 거의?? 다?? 돌려받았음
아 정말 눈물겹다
그리고 정말 부끄럽고 부끄럽고 쪽팔려라
그리고 난후 고국원왕은 짱개 남조 백잔(구다라)한테 죽음을 당했음
참고로 중국 문헌인 <위서> 와 <삼국사기> 에
기록되어져 있는 짱개 남조 백제(구다라) 의 왕 개로왕 국서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음
<...(중략) 그런데 그들의 선조인 釗(쇠 - 고국원왕)가 이웃간의 우호를 가볍게 깨뜨리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신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그리하여 신의 先祖(선조)인 須(수 - 근구수왕)가 군사를 정돈하고 번개처럼 달려가서 기회를 타 돌풍처럼
공격하여, 화살과 돌이 오고 간지 잠깐만에 釗(쇠 - 고국원왕)의 머리를 베어 높이 매달으니, 그 이후부터는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후략)...)>
아이 쪽팔리고 부끄러워라
선비족 고구려 역사상 최악의 수모는 양원왕(陽原王)이
북제(北齊)의 사신 최유에게 면상을 얻어 맞아 나가 떨어졌던 사건임
북제의 사신 최유의 기록에 나옴
그런데 그럴 만도 함 북제의 국력과 영토로 본다면...
그리고 양원왕의 나이도 어려서 더 만만하게 봤었음
그런데 대신들은 뭐여??
그리고 양원왕 즉위 전 정부인(正夫人) 과
중부인(中夫人) 으로 파가 나뉘어서 2000명이
죽었다라는 기록이 있음 -- <일본서기>
이러니 북제의 국력과 영토으로 본다면 선비족 고구려가 하찮게 보였을지도...
그리고 영류왕(榮留王)은 말 안해도 다 알 것이고...
뭐?? 모른다고??
모르면 찾아보는게 상책
하여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태왕과 장수왕밖에 모른다니까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의 역사를 쭉 보면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가 강대국?? 이라고 말을 못 할 것임
지 부왕과 선왕들의 시신들까지 파헤쳐졌고 수도까지 잡아먹히고 왕이라는 사람은 홀로
도망가고 모후, 부인, 자식들까지 다 돌려받았는지 못받았는지도
알 수가 없고(다는 못 돌려 받음)
하여튼 이래서 고구려가 모용 선비족들한테 충성을 다했었고 모용 선비족들이 망하면서
고구려로 대거 이주했던 것임
참고로 중국 문헌인 <위서> 와 <삼국사기> 에
기록되어져 있는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의 왕 개로왕 국서
내용 중에 보면 또 이런 내용이 나옴
<...(중략) 그런데 馮氏(풍씨 – 선비족 북연)의 국운이 다하여 그 遺民(유민)이 [高句麗(고구려)로] 도망하여 온 후로부터 추악한 무리가 점점 강성하여져 끝내 침략과 위협을 당하여 원한이 얽히고 戰禍(전화 –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연이은 것이 30여년입니다. (후략)...>
위에 내용이 뭐를 의미할까나??
는 각자 생각해 보길
그리고 호태왕도 선비족계통임
왜냐면?? 중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져
있는 호태왕 무덤과 다른 고구려 무덤들에서 거의 전부 선비족계통의 유물들이 출토가 되어졌음
이게 당연한게 모용 선비족들이 고국원왕 모후와 부인들과 수많은 고구려 포로들을
가만히 나두었을까나??
미천왕 시신까지 파헤쳐서 가져갔던 놈들인데...
그리고 호태왕비에는 전연, 북연, 후연등의 글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음
그런데 누가 모용 선비족들과 맨날천날 싸웠다고 했을까나??
좀 싸우긴 싸웠지만 그렇게 심하게 싸운지는 안았음
그리고 호태왕도 399년때 후연한테
조공을 바쳤고 407년때도 북연에 사신을 보냈음
그런데 그 반대로 되어진 기록들은 전혀 없음
또 모용 선비족 왕조가 망하고 바로 탁발선비 북위가 들어섰는데 장수왕은 매해 수시로
북위에 조공을 바쳤음
그런데 그 반대로 되어진 기록들은 전혀 없음
참고로 장수왕 "련" 은 별명이 조공왕임
아 하나 더 있음
중국 문헌들에는 호태왕을 "안" 이라고 기록되어져 있음
아 그리고 고구려가 지들 스스로 부여?? 에서
나왔다면서 호태왕비를 보면 410년 동부여를 개털었음 <-- 호태왕비에
다 나옴
오메 같은 부여족?? 들인데 동부여를
개박살을 내 버렸네
하여튼 이런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가 강대국??
쪽팔리고 부끄럽다 이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야
짱개 중원의 크고 작은 전쟁들과 난들로 인해 즉 혼란기를 틈타 성장한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가 무슨?? 강대국??
모용 선비족 연나라보다 강역도 훨씬 적었고 군사력, 경제력등도 상대 게임이 안되었는데 말이지
하여간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와 혼혈 선비족계열 혹은 스키타이계열인 당나라한테 개텰려서
괜히 망한게 아님
참고로 그 당시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 유민들은 중국 본토로 거의 전부 포로로
끌려가서 동화되었거나 뿔뿔히 흩어졌고 나머지 유민들은 일본 큐슈 지역으로 도망치고 한반도에 남은 유민들은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훈족(흉노족) 가야 부여
진국 삼한 금나라 청나라 그리고 아메노 히보코(이즈모) 포함)의 "향소 부곡 제도"
로 인해 270년간 전부 노예신세가 되어져서 살았음
한마디로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는 망해서 그 흔적조차 찾아볼수가 없게 되었음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구다라)와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전라왜구+큐슈왜구처럼 말이지...
한반도에 남은 소수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구다라)와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전라왜구+큐슈왜구 유민들도 신라의 "향소 부곡 제도" 로 인해서 270년간 전부 노예신세로 살았음
한반도에 남은 소수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구다라)와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전라왜구+큐슈왜구 유민들도 신라의 "향소 부곡 제도" 로 인해서 270년간 전부 노예신세로 살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