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興(연흥) 2년(472년) 에 百濟王 餘慶(백제왕 여경 – 개로왕)이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어 表(표)를 올려 말하기를,
“臣(신)이 동쪽 끝에 나라를
세워 승냥이와 이리들에게 길이 막히니, 비록 대대로 신령하신 교화를 받았으나 藩臣(번신 – “제후국의 왕” 이라는 뜻임)의
예를 받들 길이 없었습니다.>
<-- “승냥이와 이리” 는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를 가리킴
<일본서기> 를 보면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를 박(狛 – 짐승, 이리를 닮은 짐승)이라고 했음
즉 중국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임나)+큐슈왜구와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가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를 아주 교활한 짐승에 비유했다는 것임
근데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가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한테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이해가 감??
같은 부여족?? 에서 나왔다면서 말이지
요즘처럼 이념이라는 것도 없었는데 말이지
침고로 북한이 미국을 승냥이라고 비유를 자주 함
그리고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가 지들 스스로 북위의 제후국이라고 말함
아따 이게 세계적인 22담로?? 를 가진 왕조였음??
중국 남조 백제(쿠다라)는 중국 남조 왕조들과 중국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큐슈왜구한테도
지들 스스로가 "번신" 이라고 말을 했음
<天子(천자)의 궁궐을 그려
우러러 보면서 달려가는 마음 끝이 없습니다.
소슬한 바람이 살며시 일어나는데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시절의 변화에
잘 조화하시는지 우러러 사모하는 정을 억누를 길 없습니다.>
<-- 그냥 할 말이 없다 패스
<삼가
私署(사서)한 冠軍將軍(관군장군) 駙馬都尉(부마도위) 弗斯侯(불사후) 長史 餘禮(장사, 여례)와 龍驤將軍 帶方太守 司馬 張茂(용영정균, 대방태수 사마, 장무) 등을 보내어 파도에 배를 던져 망망한 바닷길을 더듬게 하였습니다.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만분의 일이나마 조그만 정성을 올리오니, 바라옵건대 귀신의 감응이 내리고 황제의 威靈(위령)이 크게 감싸주어
폐하의 대궐에 도착하여 신의 뜻이 퍼진다면, 아침에 그 말을 듣고서 저녁에 죽는다 하여도 영원히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 "장사, 여례, 사마,. 장무" 의 이름들은 전부 짱개 성씨들임
특히 사마씨는 진(晋)나라
왕조의 성씨임
그런데 이게 왜 5 왕에도 나옴
왜왕 찬이 사마조달을 중국 남조 유송에 사신으로 보내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음
자 그럼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와 중국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임나)+큐슈왜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놈들일까??
어디긴 어디야 대륙 중국에서 온 놈들이지
<또 말하기를,
“臣(신)은 高句麗(고구려)와 함께 夫餘(부여)에서 나왔으므로
先代(선대)에는 우의를 매우 돈독히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선조인 釗(쇠 - 고국원왕)가 이웃간의 우호를 가볍게 깨뜨리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신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그리하여 신의 先祖(선조)인 須(수 - 근구수왕)가 군사를 정돈하고 번개처럼 달려가서 기회를 타 돌풍처럼
공격하여, 화살과 돌이 오고 간지 잠깐만에 釗(쇠 - 고국원왕)의 머리를 베어 높이 매달으니, 그 이후부터는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 이야 고국원왕을 죽여서 머리를 베어 높이 매달아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사람들도 다 보고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도 다 알라고 고국원왕 머리를 매달아 버렸네
아 쪽팔리고 부끄럽다 이 짱개 북조 선비족 고구려야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만 저런 적이 없었음
근데 같은 부여?? 에서 나온 족속들
맞냐??
<그런데
馮氏(풍씨 – 선비족 북연)의 국운이
다하여 그 遺民(유민)이 [高句麗(고구려)로] 도망하여 온 후로부터 추악한 무리가 점점 강성하여져 끝내 침략과
위협을 당하여 원한이 얽히고 戰禍(전화 –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연이은 것이 30여년입니다.
물자도 다되고 힘도 떨어져서 자꾸만 쇠잔해지고 있습니다.
만일 天子(천자)의 仁慈(인자)와 간절한 矜恤(긍휼 – 불쌍하고 가엾계)이 멀리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면 급히 장수 한 사람을 보내어 신의 나라를 구원하여 주십시요.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굿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匹夫(필부 – 평범한 사람) 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 “선비족 북연이 망하고 유민들이 고구려로 망명하였다 그 후로 고구려가 점점 강해졌다는 것” <-- 이것이 키 포인트임
한마디로 고구려 왕조가 교체가 되어졌다는 뜻임
고국원왕때 모용 선비족들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인해 부왕 미천왕과 선왕들의 무덤들이
파헤쳐지고 그 시신까지 가지고 갔으며 고국원왕의 어머니(모후 주씨)와
부인과 자식들까지 포로로 잡혀갔었음
당연히 고구려 백성들도 엄청나게 많이 포로로 끌려갔었음
그리고 이 모후 주씨와 부인들과 자식들이 엄청나게 오래 연나라에 있었음
그럼 어떻해 되었게??
<양서> 등에 보면 호태왕을 담덕이라고 부르지 않고 “안(安)” 이라고 불렀음
이게 무슨 의미일까?? 는 각자 생각해
보도록
참고로 중국 문헌들과 일본서기를 보면 백제(쿠다라) 왕들을 “여(餘)씨” 라고 자주 불렀음
부여씨는 거의 없음
하여튼 선비족들이 세운 연나라가 망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선비족들이 고구려로 망명을
했었음
참고로 을지문덕도 선비족계 출신임
그리고 북위가 고구려를 쳐주기만 한다면 개로왕의 아들 딸들을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마굿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다고 말함 ㅋㅋㅋ
아이고야
이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하고 무슨 표현을 해야 할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 중국 남조 괴뢰국 백잔(쿠다라) 개로왕놈아
<또 말하기를
“지금
璉(련 – 장수왕)의 죄로 나라는
魚肉(어육 – 유린하다의 비유어)이
되었고, 대신들과 豪族(호족)들의 殺戮(살육)됨이 끝이 없어 죄악이 가득히 쌓였으며, 백성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멸망의 시기이며 도움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또 馮氏一族(풍씨 일족)의 사람과
말에게는 鳥畜之戀(조축지연 – 새도 지 보금자리를 그리워한다는 고사성어)이 있고, 樂浪(낙량) 등 여러 郡(군)은 首丘之心(수구지심)을 품고 있습니다.
폐하의 위엄을 한번 발동하면 정벌만이 있고 전쟁은 없을 것입니다.
신은 비록 명민하지 못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당연히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르침을 받아 움직일 것입니다.>
<-- 낙랑 즉 한사군의 하나였던 낙랑 그리고 그 현이였던 대방군
중국 문헌들에 보면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의 시조 구태가 대방군에 처음으로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고 나옴
한성(漢城) 백제가
아님
그런데 한성의 한자가 한나라 한자임
이런 지명들은 짱개 남조 백제(구다라)와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 그리고 중국에서 다 나타나는 지명들임
아니 한민족 한자도 아니고 한나라 한자를 쓰네
참고로 지구 역사상 최약체 거지 노예국가 500년
중국 속국 식민지 몽골 여진 신라계를 사칭했던 중국 출신 이성계(아기바토르)의 이씨 조선 도읍도 한성(漢城) 이였음
이러니 이씨 조선=소중화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위에 말했듯이 중국 문헌들에 보면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의 시조가 “구태(仇台)” 라고 나오는데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왕들이 구태 사당에 수시로 제사를 지낸다라고 나옴
온조와 비류는 아에 안 나옴
그런데 이 낙랑, 대방(백제(쿠다라)의 고향 땅)을 고구려에 빼앗기고 난 후 이 곳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서 백제(쿠다라) 와 고구려가 자주 싸웠던 것임
<또
高[句]麗(고구려)의 불의와 잘못은
하나 뿐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隗囂(외오)처럼 藩屛(번병)의 겸손한 말을 지껄이면서도 속으로는 흉악한 짐승의 저돌적인 행위를 품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隗囂(외오)처럼 藩屛(번병)의 겸손한 말을 지껄이면서도 속으로는 흉악한 짐승의 저돌적인 행위를 품고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劉氏(유씨 – 중국 남조 시대
유송 왕조)와 通好(통호)하기도 하고, 북쪽으로는 蠕蠕(연연 – 유연)와 맹약하기도 하여 서로 脣齒(순치- 서로 이해 관계가
밀접함)의 관계를 이루면서 王略(왕략 – 왕이 다스리는
곳)을 짓밟으려 하고 있습니다.>
<-- 또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를 교활한 승냥이와 이라라고 은근히 까고 앴음
<옛 堯(요)임금과 같이 더 없는 聖君(성군)도 南蠻(남만)을 丹水(단수)에서 쳐서 벌하셨고, 孟嘗君(맹상군 - 전국시대 제나라 정승, 정치가)처럼 어질다는 사람도 비웃는 길손을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한 방울씩 새어나오는 물이라도 마땅히 일찍 막아야 하니, 지금 취하지 않으실 것 같으면 뒷날 후회를 남기실 것입니다.>
<-- 아 애절하다
빨리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를 쳐야 한다고 옛 요 임금과 전국시대 정승까지 들먹이며
애걸하는 개로왕
<지난
庚辰(경진)년 이후, 신의 나라 서쪽
국경에 있는 小石山(소석산)의 북쪽 바다에서 10여구의
시체를 발견함과 아울러 옷과 기물•안장•굴레 등을 얻었사온데, 살펴보니 高[句]麗(고구려)의 물건들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들으니 이는 폐하의 사신이 신의 나라로 오는 것을 뱀처럼 흉악한 것들이 길을
막고 바다에 침몰시킨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하였는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깊이
분노를 느낍니다.
春秋時代(춘추시대)에 宋(송)나라에서 申舟(신주)를 살해하자 楚(초)나라 莊王(장왕)은 맨발로 뛰쳐
나갔고, 매가 놓아준 비둘기를 덮치자 信陵君(신릉군 – 전국시대 위나라
정치가이며 장군으로 위소왕의 아들)은 끼니를 굶었습니다.
적을 이겨 명예를 세움은 더할 수 없는 훌륭한 것입니다.
구구하게 외진 조그마한 나라(백제) 에서도 萬代(만대)의 신의를 사모하는데, 하물며 폐하께서는 천지의 기운을 모으셨고 형세는
山海(산해)를 기울일 만한데, 어찌하여
조그마한 어린 아이(고구려) 가 폐하께 가는 길을 걸터앉아
막게 하십니까?
이제 주운 안장 하나를 올려 증거로 삼으려 합니다.”
이제 주운 안장 하나를 올려 증거로 삼으려 합니다.”
하였다.>
<-- 백제(쿠다라) 사신이 돌아 오는
길에 고구려가 백제 사신들을 죽였다고 하면서 또 중국 옛 사람들을 들먹이며 더욱 더 고구려를 쳐야한다고 설득을 함
그런데 개로왕은 어떻해 저렇게 중국 옛 성인들을 잘 알까나??
왜 저렇게 잘 알까?? 는 각자 생각해
보도록
참고로 근데 북위에서는 이것(안장)이 중국 것이 아니였다라고 말함
개로왕 열나게 열 받았겠다
그리고 구구하게 외진 조그마한 나라라고 개로왕이 직접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2담로?? 라는 말도 안되는 학설로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가 세계 경영을 한 대제국??
이였다라고 뻥을 쳤던 우리나라 역사 학자들은 뭐다??
참고로 중국 문헌들(예로 남사(南史)등)에 보면 22담로는 중국의 군현과 비슷한 제도라고 기록되어져 있음
한마디로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의 22담로는 중국 남조 왕조들의 제도를 본 떠서 만든 것이라는
뜻임
그리고 개로왕은 또 지들 나라가 조그마한 나라라고 하면서 북위를 사모하여 천자를
뵙고자 하는데 조그마한 어린 아이(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가
길을 막는다러고 말함
그런데 호태왕과 장수왕때 고구려는 영토가 좀 꽤?? 컷었나오는데...
백제(쿠다라)는 고구려를 조그마한 나라라고 말함
이야 저 기록으로 보면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를 큰 나라?? 라고 볼 수가 있을까나??
하여간 이런 건 절대로 역사 교과서들이나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 줌
왜냐고?? 부끄럽고 쪽팔리거든
아 그런데 가르치지 않아도 됨
왜냐면?? 중국 북조 선비족 고구려와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와 중국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임나)+큐슈왜구는 원래 한민족의 역사들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