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4, 2019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의 두번째 도읍지였던 한성 백제는 5세기 초나 5세기 중 후반때의 시기임

풍납토성 축조 연대 놓고 논란 (2012.09.25)

위에 뉴스 내용들을 살짝 한번 보자

<2000년대 초반 풍납토성 경당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산 시유도기. 장독 같은 이 대형 항아리 용도를 놓고 국내 학계는 생선뼈 등이 나온 점을 들어 젓갈통으로 추정했으나왕즈가오는 “원래 술동이로 수입한 것을 재활용했다”는 새 견해를 내놓았다.>

<
중국 왕즈가오 교수 논문 파장

토성 축조 3세기 근거 ‘시유도기’

4~5세기 유물이라 파격 주장

학계 “납득못해” “연구해봐야”>

<성안 창고터 경당 유적 등에서 30점 넘게 쏟아진 항아리들은 크기가 50㎝를 넘는 대형이고, 일부는 겉에 재복의 상징물인 동전 모양 ‘전문’(錢文)까지 찍혀 단연 주목받았다.

계는 3세기 중국 동오~동진시대 빚은 것으로, 풍납토성 출토품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제작시기(편년)가 명확한 유물로 해석했다.>

<이런 근거를 확대해 대형 토목공사의 결과물인 풍납토성 축조 연대는 3세기 전반·중반까지 올라갔다. 학계·언론은 ‘한국판 폼페이’라며 흥분했다.

고대 왕국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때 가서야 성립된다는 일본 식민주의 실증 사학자들의 학설을 뒤집는 근거를 마침내 찾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최근 통설로 굳어져온 국내 학계의 이런 견해를 뒤집는 중국 학자의 논문이 발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중국 남조·백제 유물 교류사를 연구해온 왕즈가오 난징사범대 교수.

는 지난 21일 ‘동북아시아 속의 풍납토성’이란 주제로 열린 서울 한성백제박물관 국제학술회의에서 논고를 통해 풍납토성 출토 시유도기 등으로 판단해볼 때 축조 연대는 3기로 올려잡을 수 없고, 중국 동진 중·후기에서 남조 초기인 4세기 후반~5세기 중·후기에 쌓은 것이란 파격적 주장을 내놓았다.>      

<…(중략) 풍납토성을 비롯해 인근 몽촌토성, 충남 공주 수촌리 고분, 전북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터 등의 출토 시유도기와 모양·태토·유약 등이 유사한 남조 유적의 시유도기 표본을 찾아내 맞춰본 것이다.>

<그 결과 국내 학계가 주장해온 3세기 동오와 서진시대의 도기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옹 같은 대형 그릇의 모양이나 유약을 바른 형태 등에서 4~5세기 동진과 남조 초기의 유송시대 도기의 특징만 확인됐다고 한다.>

<그의 발표는 고대 왕국 백제가 4~5세기께야 등장한다는 기존 실증사학자들의 주장을 되레 뒷받침하는 내용이어서 국내 학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남조 고고학 연구자인 조윤재 인제대 교수는 “왕즈가오의 분석은 국내 학계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고민거리를 안겨준 것”이라며 “중국 남조·백제 유물의 비교 연구 심화를 통해 풀어야 할 것”이란 견해를 내놓았다.>


먼저 중국, 일본, 서양의 고고학 연구 분석 수준>>>>>>>>>넘사벽>>>>>>>>>>>>>우리나라 고고학 연구 분석 수준

풍납토성, 몽촌토성에서 발견이 되어진 100프로 짱개 남조 왕조들의 유물들이 동진(420) 이후의 것들이라고 주장하는 앙즈가오 교수

당연히 중국 남조 시대 유물들과 비교 분석을 해서 발표를 한 것임

자 그럼 동진 후때의 유물들이면 한성 백제(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2번찌 도읍)는 빨라야 5세기 초 늦어야 5세기 중 후반때 일임

그렇다면?? 일제 시대때 일본놈들이 주장한 것이 거의 맞다는 소리임

참고로 토성의 원조는 중국임

그런데 중국 문헌들에 삼한에는 토성을 축초했다는 기록들이 전혀 없음


자 그럼 짱개 남조 괴뢰국 벡제(쿠다라)는 이렇게 정리를 할 수가 있음

<1기 백제 - 313년?? ~ 427: 황해도(대방 백제) = 114

참고로 한사군의 하나였던 낙랑군(현 황해도) 313년때 망했고 중국 본토에서 영가(307~312)의 난(311년에 일어남)” 으로 인해서 대규모 짱개놈들이 한반도로 건너 

2기 백제 - 427년 ~ 475년 - 한성 백제 시대(서울 풍납동) = 48

3기 백제 - 477년?? ~ 660년 충청 백제 시대(웅진, 사비) = 183~185>


자 그런데 중국 일본 역사 학자들과 고고학 학자들이 맞을까??

아니면 우리나라 역사 학자들과 고고학 학자들이 맞을까??

참고로 한국 고고학 학자들이 중국 일본 고고학 학자들보다 훨씬 더 늦게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기 시직했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어지는 고고학적 유물들은 무조건 중국 일본 서양 고고학자들과 공동으로 조사 분석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