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8, 2019

중국 이민자 후손인 선조는 정말로?? 나쁜 왕이였을까?? (Feat.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중국 이민자 후손인 선조는 정말로?? 나쁜 왕이였을까?? (Feat.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자 그럼 <조선왕조실록> 을 한번 보기로 하자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발발 2년째였던 선조 26년에 명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그때까지의 전쟁 상황 일체를 보고하라고 했음

당시 조선 조정에서 작성해 명나라에 보낸 보고문에 전쟁 발발 전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음


<임금이 남별궁에 나아가 유성룡을 인견하고 중국 사신에 관한 일 등을 의논하다>

(중략)

삼가 살피건대소방에서는 지난 신묘년 여름에 일본의 적추(賊酋)가 요승(妖僧현소(玄蘇)를 보내어 와서 변문(邊門)을 두들기고 투서(投書)하였는데그 말이 아주 도리에 어그러졌으며 소방을 협박하여 저들을 따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소방의 군신은 이를 절통하게 미워하고 근심하면서 반드시 적변(賊變)이 있을 것을 알고 곧 사신을 보내어 경사(京師)로 달려가 아뢰게 하였습니다.

또 순찰사(巡察使김수(金睟)를 경상도로이광(李洸)을 전라도로윤선각(尹先覺)을 충청도로순변사(巡邊使신립(申砬이일(李鎰)을 경기·황해도로 보내어 군정(軍丁)을 점열(點閱)하고 군기(軍器)를 수조(修造)하며 성지(城地)를 선축(繕築)하게 하였습니다.

또 경상도는 전에도 적침을 받은 땅이므로 부산·동래·밀양·김해·다대포(多大浦창원·함안 등지의 성을 증축하고 참호도 깊이 팠습니다.

내지(內地)의 성이 없는 곳으로서이를테면 대구부(大丘府청도군(淸道郡성주목(星州牧삼가현(三嘉縣영천군(永川郡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안동부(安東府상주목(尙州牧)같은 곳은 다 백성을 징발하여 성을 쌓았습니다.

또 인정이 안일에 젖어 태만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국왕이 근신(近臣승지(承旨등의 관원을 잇달아 보내어 살펴보고 독촉하게 하고어기거나 게을러서 시기를 놓친 자에게는 경중에 따라 처벌하였습니다.

(후략)

- <선조실록 45선조 26년 윤11 14일 갑오 2번째기사>


짱개 이민자 후손 선조는 김성일의 보고를 믿지 않았음

오히려 절박한 위기감을 갖고 전쟁에 대비했고 유능한 무장들을 최전선에 배치하려 노력했음

그리고 왜군과의 전투에 대비해 남쪽 지방 성들을 신축하거나 개축하도록 강력히 조치했음


이런 상황을 류성룡이 쓴 <징비록에도 다 나옴


<그 뒤 우리 조정에서는 왜국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변방 사정에 밝은 사람을 뽑아서 남쪽의 삼도(三道:경상·전라·충청)를 방비하게 했다.

경상감사에는 김수전라감사에는 이광충청감사에는 윤선각을 보내 병기를 준비하고 성지(城池)를 수축하게 했다.

삼도 중에서 경상도에 성을 가장 많이 쌓게 했다.

영천청도삼가대구성주부산동래진주안동상주 등에는 병영까지 신축하거나 중수하게 했다.

이때 국가는 오랫동안 승평한 세월이 흐를 때였다.

안팎이 모두 편하게 사니백성은 자연 노역을 꺼려서 원망하는 소리가 자자했다.>

- <징비록내용 중에


그렇다

선조는 아무 문제 없었다

조선 백성들이 지랄이였다

마치 요즘 미국 군대가 한국을 지켜주고 있고 70년 가까이 큰 전쟁이 없어서 지금 좌파들의 평화쇼에 속아 넘어가서 즉 공산당 독재국가 북한과 좌파 정권의 비핵화종전등의 평화 쇼에 속아서 북한이 미사일을 쏘던지 말던지 우리한테는 않쏘았으니 괜찮다라는 식의 안일함과 100프로 매치가 되지 안음?? 안그래??

그래도 그 당시 조선에서는 짱개 이민자 후손인 선조만은 제정신이 박혀 있어서 저 정도라도 했던 것임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 로마 속담인 동시에 영국 해군의 표어임


하여간 짱개 이민자 후손은 선조는 전쟁 준비를 철저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결론 : 짱개 이민자 후손 선조는 그 당시에 아주 올바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 백성들이 선조의 말을 안 들었다

그래서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때 조선 백성들이 일본놈들한테 엄청나게 학살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