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7, 2020

반일 극일(克日) 외치던 정권의 아이러니한 현상(feat. 윤치호 왈 : 조선인은 10프로의 이성과 90프로의 감성으로 살아간다)

克日 외쳤지만올 첨단 장비 수입 78% 급증 (2020.09.06)

https://www.mimint.co.kr/bbs/view.asp?strBoardID=media&bbstype=S1N11&bidx=2819746


克日 외쳤지만올 첨단 장비 수입 78% 급증 (2020.09.06)

https://www.sedaily.com/NewsVIew/1Z7R1QR5BG

일본산 반도체 장비·전자회로 등

7월까지 2 221억어치 사들여

재계 "고품질 제품 대체 어려워"


대일 수입의존도 90% 이상 품목 48” (2019.07.28)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7281698311131

국내에, 일본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이 48개에 이르며 최근 격차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산업 경쟁력은 일본에 열세라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을 이기고 싶거든 감성적인 사고를 버리고 이성적으로 생활해 가기 바람

특히 우리나라 좌파들아


윤치호 왈 : 조선인은 10프로의 이성과 90프로의 감성으로 살아간다


거지 노예국가 500년 중국의 속국 식민지 이씨 조선의 인구 변화에 대해서 살짝 한번 알아보자(feat.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전과 임란 호란 후의 인구)]

<거지 노예국가 500년 중국의 속국 식민지 이씨 조선의 인구 변화에 대해서 살짝 한번 알아보자(feat.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전과 임란 호란 후의 인구)

먼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와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발췌를 했음

인구(人口)


중종 38(1543년) - 4,162,021

즉 왜란 호란 전에 조선 인구가 400만명 정도

인조 17(1639년) - 1,521,165

왜란 호란 후에 조선 인구가 150만명으로 되어있음

참고로 일제 시대때는 이상하게 인구가 열나게 늘어남

자 그런데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의 일어난 시기가 1592년 5월 23일(음력 4월 13일) 에 일어났다

1543년 중종때 400만 정도 였으면 1592년때는 어느 정도 인구였을까??



16세기 말 동아시아 세계의 대충돌, 임진왜란 – 이상훈/해군사관학교 박물관 기획연구실장/2013.09

임진왜란 : 壬辰倭亂

(중략) 임진왜란 즈음 일본은 인구 1,200만이 넘고(조선은 800만으로 추산) 무(武)를 중시하는 가운데 상업이 발달하고 화려한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있었다. (후략)



(2) 인구학적 연구방법에 의한 연구결과

(중략) 조선 건국의 해인 1392년의 인구는 약 555만 명, 임진왜란 직전인 선조 24년은 약 14,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하였다. (후략)



(중략) 이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인구는 인조 17년(1639)의 152만여 명에서 1910년에는 1,293만여 명이 되어 270년 동안에 무려 850%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후략)

- <우리역사넷> 출저

자 이걸 바탕으로 간략하게 보자면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직전 조선의 인구가 500만명~1400만명 정도 였음

그래서 임진왜란 직전 약 500만명~900만명이 인구가 조선에 있었다는 것임

그러나 인조 17(1639년)년도에는 150만명 정도였음

자 그럼 임란 호란으로 조선인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알 수가 있음

참고로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는 약 7년간의 전쟁이였음

그리고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전쟁 기간이 짧지만 엄청나게 많은 조선인들이 죽음을 당했고 포로로 끌려갔음


자 그럼 <조선왕조실록> 을 한번 보기로 하자


이해의 호수는 83만 6천 6백 69호이고 민구는 4백 16만 2천 21구이다

이해의 호수(戶數)는 83만 6천 6백 69호이고, 민구(民口)는 4백 16만 2천 21구이었다.

- [중종실록 101권, 중종 38년 12월 29일 기해 4번째기사, 1543년 명 가정(嘉靖) 22년]


이건 덤임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3) 조선시대의 인구 -장기 변동 (2014.05.16)


인구 임진왜란으로 감소 후 다시 증가

(중략)

국가가 파악한 인구가 1543년 416만여명이었는데, 1639년에는 152만여명에 불과하였다.

이와 함께 임진왜란 직전에 150만결이었던 경지 면적도 전쟁 직후인 1601년에는 30만여결로 줄어들었다. 

(중략)

조선 건국 초기 인구 550만명 추정

(중략)

Friday, August 28, 2020

대한민국의 전주(全州)라는 지명이 중국에도 있다

중국 전주와 한국 전주의 연관성 (2011.06.29)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5845

위에 내용을 살짝 한번 알아보자

<몇 해 전 중국에도 전주(全州)가 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주라는 지명이 같을 뿐만 아니라, 특이하게도 한국 전주에 있는 완산, 기린봉, 금산사 등이 중국 전주에도 있으며, 중국에 전주라는 지명이 등장한 것이 후백제가 멸망한 직후인 937년경이었다.

그래서 후백제 멸망후 그 후예들이 중국으로 들어가 전주를 건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하였다. >

<-- 무조건 저렇게 주장을 하고 있다

먼저 중국 문헌들인 <북사>, <수서> 등만 봐도 “백가가 바다를 건너 왔다” 고 해서 “백제” 라는 국호를 삼았다라고 나옴

그 바다를 건넌 나라가 어디였겠는가??

당연히 중국임

그리고 대방(현 황해도) 에 도읍을 정하고 처음부터 중국의 신하 노릇을 했다라고 나옴

참고로 문화사적으로 인류사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고구려 백제는 중국사들며 전라도 왜국 임나는 일본사임

하여간 이로써 거지 노예국가 500년 중국 속국 식민지 이씨 조선의 전주 이씨들이 어디에서 넘어왔는지 알것임

참고로 이성계(아기바토르) 의 부모님들 다 중국에서 고려로 이주해서 산 사람들임

그리고 중국 한족들이 한반도와 일본 열도 특히 한반도로 대거 이주한 계기가 바로 중국 한족 왕조들이였던 북송과 명나라의 멸망 때문임

이 한족 왕조들이엿던 북송과 명나라가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한테 무지막지하게 학살을 당했기에 어떻해 해서는 피하는 수 밖에 없었음

그 도망 칠 나라들이 바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였음

참고로 지금 한국내 한국말 잘 하는 중국 이민자 후손들이 무려 45~50프로 가까이 된다

Tuesday, August 25, 2020

중국 문헌들인 삼국지, 후한서, 양서등에 나오는 전라도 왜국 즉 임나는 실제로 존재를 했다(feat. 호태왕비에 임나라는 지명이 나옴)

[중국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왜국(큐슈+전라도) 은 실제로 존재를 했다]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韓(한)은 帶方(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倭(왜)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쯤 된다.

[韓(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馬韓(마한), 둘째는 辰韓(진한), 세째는 弁韓(변한)인데, 辰韓(진한)은 옛 辰國(진국)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민족 내용 중에



弁辰與辰韓雜居, 亦有城郭. (중략) 其瀆盧國與倭接界. (후략)

弁辰(변진)은 辰韓(진한) 사람들과 뒤섞여 살며 城郭(성곽)도 있다.

(중략)

그 중에서(혹은 변진) 瀆盧國(독로국)은 倭(왜)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후략)

-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민족 내용 중에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후략)

馬韓(마한) 은 서쪽에 있는데, 54國(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樂浪(낙랑), 남쪽은 倭(왜)와 接(접)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國(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濊貊(예맥)과 接(접)하여 있다.

弁辰(변진)은 辰韓(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國(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倭(왜)와 接(접)해 있다. (후략)

- <후한서> 동이열전 한민족 내용 중에



(중략) 其國近倭, 頗有文身者. (후략)

(중략) 그 나라 가까이에 倭(왜)가 있어서, 文身(문신)한 사람들도 꽤 있다. (후략)

- <양서> 동이열전 골수 친왜파 중국 남조 괴뢰국 백제(쿠다라) 내용 중에


그렇다

전라도 왜국 즉 임나는 실제로 존재를 했었다


이건 전라도에서 일본식 전방후원분이 발견되어진 뉴스임

강진에서 발견된 ‘전방후원분’ (2013.02.22)



역사를 왜곡하고 감춘다고 영원히 감추어지는게 아님

옆나라 중국과 일본은 학교에서 전라도 왜국 즉 임나를 다 배우고 있음

그리고

[호태앙비에 분명히 임나(那加) 라는 지명이 나온다]

(중략) 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후략)

- <호태왕비> 내용 중에

저기 분명히 임나(任那) 라는 글자가 나온다

Thursday, August 6, 2020

거지 노예국가 500년 중국의 개였던 이씨 조선과 대한민국(feat. 소중화 사상)

1.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

- 조선의 하늘과 땅(천지)은 명()나라의 것이고 해와 달은 숭정제(崇禎帝)의 것이다

이것 말고도 이런 말들이 더 있음

<대명일월 소화강산(大明日月 小華江山),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

참고로 숭정제는 명의 16대 왕이며 명나라의 마지막 왕임

그 다음은 남명으로 간간히 이어갔지만 후금 청나라한테 끝내 멸망당함

참고로 <금사> <송막기문> <흠정 만주원류고> 에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가 신라 김씨 왕족들의 후예들이 만주로 넘어와서 세웠다라고 나옴

즉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 김씨 왕족들의 후예들이 성질이 비슷한 반유목민들인 여진족들을 규합해서 세운 나라가 바로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라는 것임

다시 말해서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의 수장들이 전부 신라 김씨 왕족들의 후예들이라는 것임

신라 김씨 왕족들은 흉노족들임 문무매금대왕비, 김인문비, 흥덕매금대왕비, 대당고김씨부인묘비등에 다 나옴


2. 재조지은(再造之恩)

- 나라를 다시 만들어 준 은혜혹은 거의 망하게 된 걸 구해준 은혜라는 뜻임

다시 말해서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때 망해가던 조선을 명이 군대를 보내 다시 세워준 은혜" 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널리 쓰인 용어임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당시 명나라 군대가 도와주지 안았다면 조선은 망했음

수도 한성을 단 20일만에 함락당하고 함경도 두만강까지 초토화 되고 선조는 도망까지 쳐서 명나라로 망명까지 할려고 했음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때는 더욱 더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갔음

특히 전라도 지역은 그냥 초토화가 되어졌음

이런 상황속에서 명나라 군대가 없었다면 조선은 한달도 채 안되어서 망했음

그런데 그 당시에 조선은 그냥 망해야 했음

하여간 저 재조지은이라는 말은 임진왜란으로 망해가는 조선을 구원해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명나라 황제들이여 라는 뜻임


3. 만동묘(萬東廟)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명나라 신종(神宗 - 만력제)을 위해 세운 사당임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때 중국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줬다고 세운 사당임

그런데 이 사당을 제사 지낼 때 조선 유림들이 기어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음

그것도 일제시대때까지

그걸 본 일본이 만동묘를 비롯해 숭의묘, 동관묘, 남관묘, 북관묘, 지방관묘 등 모두 폐지시켜 줬음


4. 대보단(大報壇)

- 명나라의 태조·신종·의종을 제사지내던 제단으로, 조선 숙종 30(1704)에 창덕궁 안의 금원(禁苑, 비원) 서쪽에 설치하였던 사당임

경기도 가평군 조종암에도 같은 이름의 단()이 만들어져 있음 - <가평 조종암의 대보단과 대통묘>


빛나는 조선국이 아니었네? (2006.12.13)

조선시대 비석 첫 머리에 새겨진 사대주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79599


그런데 지금 또 중국몽 중국목 이라고 부르짖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있는데

결론 : 대한민국 남자들은 중국에 대한 노예근성이 아주 강함

Saturday, August 1, 2020

허울뿐이였던 고려의 막장 왕인 충혜왕이 원 사신들한테 얻어터지는 내용이 <고려사> 에 나옴

http://db.history.go.kr/KOREA/item/compareViewer.do?levelId=kr_036r_0090_0100_0030

원 사신 내치 등이 정동행성에서 왕을 체포해서 압송해가다

甲申 托以告郊頒赦, 遣大卿朶赤·郞中別失哥等六人來. 王欲托疾不迎, 龍普曰, “帝常謂王不敬, 若不出迎, 帝疑滋甚.” 王率百官朝服郊迎. 聽詔于征東省朶赤·乃住等蹴王縛之. 王急呼高院使龍普叱之. 使者皆拔刃, 執侍從群小, 百官皆走匿左右司郞中金永煦萬戶姜好禮密直副使崔安祐, 鷹揚軍金善莊等中槊持平盧俊卿, 及勇士二人被殺, 中刀槊者甚多辛裔伏兵, 禦外以助之朶赤等卽掖王, 載一馬馳去. 王請小留朶赤等拔刃脅之. 王悶甚索酒, 有一嫗獻之.

- <고려사, 세가 권제36, 충혜왕()(忠惠王()) 4, 11>


해석 :

[원 사신 내치 등이 정동행성에서 왕을 체포해서 압송해가다]

갑신 원()에서 교사(郊社)를 지내고 사면령을 반포한다는 명목으로 대경(大卿) 타적(朶赤, 도치)과 낭중(郞中) 별실가(別失哥, 베시게) 6인을 보내왔다.

왕이 병을 핑계로 영접하지 않으려 하자 고용보(高龍普)가 말하기를, “황제께서는 늘 국왕이 불경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왕께서 나가서 영접하지 않으면 황제의 의심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조복(朝服) 차림으로 교외에서 영접하였다.

정동성(征東省)에서 조서를 듣는 도중에 타적과 내주(乃住, 나이주) 등이 왕을 발로 차고 결박하였다.

왕이 급히 원사(院使)인 고용보를 불렀지만, 고용보는 왕에게 〈도리어〉 욕을 하였다.

원의 사신들이 모두 칼을 빼어 들고 왕을 시종하는 군소(群小)들을 체포하였다.

백관들은 모두 도망쳐 숨었는데, 좌우사낭중(左右司郞中) 김영후(金永煦)와 만호(萬戶) 강호례(姜好禮), 밀직부사(密直副使) 최안우(崔安祐), 응양군(鷹揚軍) 김선장(金善莊) 등은 창에 찔리고, 지평(持平) 노준경(盧俊卿)과 용사(勇士) 2인은 살해되는 등 칼과 창에 찔린 자가 매우 많았다.

신예(辛裔)가 병사를 매복시켜 밖을 방어하며 조력하는 사이에 타적 등은 왕을 부축하여 말 한 필에 싣고 달려갔다.

왕이 조금만 쉬자고 청하였지만 타적 등은 칼을 뽑아 들고 협박하였다.

왕은 매우 괴로워서 술을 찾았는데 어떤 노파가 술을 바쳤다.

- <고려사, 세가 권제36, 충혜왕()(忠惠王()) 4, 11>


어떻해?? 된 것이 중국사인 선비족 고구려의 양원왕도 중국 사신인 최유한테 얻어터지고 허울뿐이였던 고려의 막장 왕인 충헤왕도 원 사신들한테 얻어터지는가??

고려 라는 국호이 데자뷰인가??


유치하기 그지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feat.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대한민국)

무릎꿇은 사람이 아베총리?…'영원한 속죄' 동상 논란 (2020-07-29))

https://youtu.be/2VXBAhZo3sA

https://yonhapnewstv.co.kr/news/MYH20200729001700641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의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

참으로 유치하기 그지 없음

이런 감성적인 공격으로 일본을 이길 수기 있을까??

절대로 이길 수가 없음

 

윤치호 왈: 조선인은 10프로의 이성과 90프로의 감성으로 살아간다



일본왕은 중국인이다(feat.오태백과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문신 풍습)

[중국 문헌인 진서, 양서, 북사 왜국전에 보면 일본의 시조가 오태백이며 왜인들의 풍습으로는 문신 풍습이 있다라고 나온다] http://contents.nahf.or.kr/id/jo.k_0005_0097_0020_0010 왜인(倭人)은 대방(帶方)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