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1, 2024

일본왕은 중국인이다(feat.오태백과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문신 풍습)

[중국 문헌인 진서, 양서, 북사 왜국전에 보면 일본의 시조가 오태백이며 왜인들의 풍습으로는 문신 풍습이 있다라고 나온다]

http://contents.nahf.or.kr/id/jo.k_0005_0097_0020_0010

왜인(倭人)은 대방(帶方)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다.

섬으로 나라를 이루고 있어 그 땅은 산림이 많고 좋은 밭은 없으며 해산물을 먹고 산다.

(중략)

남자는 성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을 한다.

스스로 태백(太伯)의 후손이라 하였다.

- <진서> 왜(倭)


http://contents.nahf.or.kr/id/jo.k_0008_0054_0140_0010

왜는 스스로 말하기를 태백(太伯) 의 후예라고 한다.

풍속으로는 모두 문신을 한다.

-<양서> 왜(倭)


http://contents.nahf.or.kr/id/jo.k_0015_0094_0090_0010

왜국은 백제와 신라의 동남에 있는데, 수륙(水陸)으로 3,000리이며, 큰 바다 가운데서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산다.

위나라 때 통역을 써서 중국과 교통하는 것이 30여 나라였는데, 모두 자(子)라고 칭하였다.

(중략)

풍속이 모두 문신을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태백(太伯)의 후예라고 한다.”고 하였다.

- <북사> 왜(倭)


<-- 먼저 왜인들의 문신 풍습은 중국 문헌들인 삼국지, 후한서 왜인전에도 다 나온다

자 그럼 태백은 누구인가?

태백은 오태백이를 일컫는 말임

오태백은 주 태왕 고공단보의 장남이었음

그런데 오태백과 오태백 동생인 중옹이 막내아들인 계력한테 왕이가 돌아가자 동생 계력을 위해 이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가 국호를 "구오(句吳)" 라고 칭하고 태백과 중옹이 이민족들의 풍습인 변발을 하고 문신을 새기고 자신들은 중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울리지 안다며 중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절한 인물들임

그리고 문신 풍습은 고대 장강 문명과 동남아 일대 즉 "백월 민족" 들한테서 나타나는 풍습임

그런데 이런 문신 풍습이 고대 왜인들한테도 나타난다는 것임

그리고 일본이 메이지 유신대까지 이빨을 검게하는 풍습 즉 "오하구로(お歯黒)" 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도 고대 장강 문명과 동남아 일대 즉 백월 민족들한테서 나타나는 풍습이였음

이것만 봐도 일본인들은 중국 남조 지역이자 춘추 5패에 해당했던 오나라 월나라에서 넘어 온 것이 확실하다는 것임

그리고 이런 것이 중국과 일본 역사 학자들과 고고학자들과 유전자 학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는 상태임


[단독]함평서 첫 日얼굴토기 출토… “5세기 왕성했던 국제교류 흔적” (2018.12.26)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189291?sid=103

<-- 이 뉴스를 보면 <일본 돗토리현에서 발견된 식륜>의 그림이 나오는데 인물 식륜을 자세히 보면 얼굴과 온 몸에 문신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음


오하구로(お歯黒) - 일본의 풍습중에 하나였던 이빨을 검게하는 풍습

https://namu.wiki/w/%EC%98%A4%ED%95%98%EA%B5%AC%EB%A1%9C

- <나무위키> 출저

お歯黒 - 일본의 풍습중에 하나였던 이빨을 검게하는 풍습이 중국 운남성 지역과 동남아 일대에서도 나타난다

https://ja.wikipedia.org/wiki/%E3%81%8A%E6%AD%AF%E9%BB%92

- <위키백과> 일본어판


참고로 중국 문헌들인 삼국지, 후한서 한민족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전라도 지역에서도 왜인들이 살았다라고 다 나온다는 것임

임나일본부(전라도 왜국 임나)는 실제로 존재를 했다는 것임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prevPage=0&prevLimit&itemId=jo&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jo_004r_0010_0070_0150&position=-1

弁辰(변진)은 辰韓(진한) 사람들과 뒤섞여 살며 城郭(성곽)도 있다.

衣服(의복)과 주택은 辰韓(진한)과 같다.

言語(언어)와 法俗(법속)이 서로 비슷하지만,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방식은 달라서 문의 서쪽에 모두들 竈神(조신)을 모신다.

그 중에서 瀆盧國(독로국) 은 倭(왜)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 <삼국지> 한(韓)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totalCount=0&prevPage=0&prevLimit&itemId=jo&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jo_003r_0010_0070_0020&position=-1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倭)와 접(接)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예맥(濊貊)과 접(接)하여 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倭)와 (접)接해 있다.

- <후한서> 한(韓)


참고로 왜인들은 농경민족+해양민족이여서 바다의 물길을 아주 잘 아는 민족이였음

왜인들은 유럽의 바이킹들이라고 생각하면 됨

노량해전은 중국 명나라 군대가 다 해 준 것이다 (feat. <명사> 조선열전과 조선왕조실록)

[노량해전은 중국 명나라 군대가 다 해 준 것이지 조선 해군이 한 것이 아니다]

정유 재란때 "사로 병진 작전" 의 총 지휘관이 다 명나라 장수들이였음

그리고 도요토미가 갑자기 죽지 안았다면 조명 연합군도 이기기 힘든 싸움이였음

그리고 <명사> 등자룡전에는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죽은 등자룡을 구원하러 가다가 이순신도 시마즈한테 죽음을 당했다라고 나오며 <선조수정실록> 에는 등자룡의 시신을 수도 한성으로 모셔 와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내줬다라고 나옴


<자 그럼 <명사> 조선열전을 한번 보기로 하자>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totalCount=0&prevPage=0&prevLimit=&itemId=jo&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jo_023r_0010_0010_0890&position=-1

[萬曆 二十六年(1598)]十一月, 淸正發舟先走, 麻貴遂入島山·酉浦, 劉綎攻奪曳橋. 石曼子引舟師救行長, 陳璘邀擊敗之. 諸倭揚帆盡歸.

自倭亂朝鮮七載, 喪師數十萬, 糜餉數百萬, 中朝與屬國迄無勝算, 至關死而禍始息.

<十一月,正發舟先走,麻貴遂入島山、酉浦,劉綎攻奪曳橋。石曼子引舟師救行長,陳璘邀擊敗之。諸倭揚帆盡歸。

自倭亂朝鮮七載,喪師數十萬,糜餉數百萬,中朝與屬國迄無勝算,至關白死而禍始息。>

- <明史> 朝鮮列傳

해석:

[萬曆(만력)] 26(A.D.1598; 朝鮮 宣祖(조선 선조) 31) 11월에 [加藤]淸正(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 이 배를 내어 먼저 달아났다.

麻貴(마귀)는 드디어 島山·酉浦(도산, 유포)에 들어갔고, 劉綎(유정) 은 曳橋(애교)를 공격하여 탈환하였다.

石曼子(석만자-시마즈 요시히로) 가 배를 이끌고 [小西]行長(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 을 구원하려 하자, 陳璘(진린) 이 이를 맞이하여 쳐부수어 패배시켰다.

여러 곳의 倭軍(왜군) 이 돛을 달고 모두 돌아갔다.

()가 朝鮮(조선)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中國(중국) 과 朝鮮(조선) 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關白(관백-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죽고서야 禍亂(화란) 이 비로소 종식되었다.

- <명사> 조선열전

<-- 그렇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지 안았다면 거지 노예국가 500년 중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끝장이 났고 중국 명나라도 불안한 상황이였음

그리고 명나라 군대가 다 했다고 나옴

또 도망자 이순신은 이름조차 안나옴

<명사> 조선열전에 이름조차 안 나오는 이런 도망자 이순신이 그 당시 일본과 명나라에서 유명했다라는 것은 어불성설임

그리고 중국 명나라 왕이 이순신한테 팔사품을 하사해 줬다라고 하는 것도 다 거짓말임

 

<자 그럼 <조선왕조실록>도 한번 보기로 하자>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111024_004

[군문 도감이 중국 장수의 활약상에 대해 아뢰다]

군문 도감이 아뢰기를,

"방금 진 도독의 차관(差官)이 들어와서 말하기를왜적의 배 1백 척을 포획했고 2백 척을 불태웠으며, 5백 급()을 참수하였고 1 80여 명을 생포하였다.

물에 빠져 죽은 자는 아직까지 떠오르지 않아 그 숫자를 알 수 없다.

또 이 총병(李總兵)은 죽은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선조실록 106, 선조 31 11 24일 을사 4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

<-- 그렇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명나라 군대의 활약상이 대단하다라고 나온다


<자 그럼 <명사> 등자룡전과 <선조수정실록>을 한번 보기로 하자>

https://zh.wikisource.org/wiki/%E6%98%8E%E5%8F%B2/%E5%8D%B7247#%E9%84%A7%E5%AD%90%E9%BE%8D

[명사] 등자룡 열전 - [(중략) 他舟誤擲火器入子龍舟,舟中火,賊乘之,子龍戰死。舜臣赴救,亦死。(후략)]

- <明史> 鄧子龍

<-- 저 한자 해석을 해 보면 일본군과 싸우다 죽은 등자룡을 구원하러 가다가 이순신 역시 시마즈한테 죽음을 당했다라고 나옴

둘 다 시마즈한테 죽었다라고 나옴


https://sillok.history.go.kr/id/knb_13203001_001

[진인의 노량 전투에서 총병 등자룡이 전사하니 친히 제사하다]

진인(陳璘)의 노량(露梁) 전투에서 총병(摠兵) 등자룡(鄧子龍)이 역전하다가 전사하였는데, 그 상()이 남쪽에서부터 서울로 오니, 상이 친히 임하여 제사하였다.

- <선조수정실록 33, 선조 32 3 1일 경진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


이건 덤임

“이순신 팔사품,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것 아니다” (2014.11.07)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348852#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