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15, 2021

신라 김씨 왕족이 흉노족인 동시에 서흉노족인 스키타이족 서양인이였다는 고고학적인 무덤의 고인골이 또 발견이 됨

삼국시대 180cm 키다리가… 최장신 유골, 경주서 발굴 (2021.07.15)

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1/07/15/UMJC34LFRRCGFCWXKWJI5LIM6M/

삼국시대 최장신 180cm 인골 발견… 머리 모양이? (2021-07-15)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10715/107967444/1

9척 석탈해급 키···경주 무덤속 180cm 신라남성 누구였을까 (2021.07.15)

https://news.joins.com/article/24106314

<--오직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와 삼한에서만 나오는 편두 풍습

이 편두 풍습은 삼한 특히 변진서도 하는 풍습이다라고 중국 문헌들에 나옴

이 편두 풍습은 전형적인 중앙 아시아의 넓은 초원에 살던 흉노족들의 풍습임

참고로 신라 김씨 왕족들의 시조인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

특히 투후 김일제의 키가 무려 190이였음


Tuesday, July 6, 2021

관산성 전투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feat. <삼국사기> 와 <일본서기>)

관산성에서 백제를 물리치다 ( 554년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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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王明襛與加良來攻管山城. 軍主角干于德·伊湌耽知等, 逆戰失利.

新州軍主金武力以州兵赴之, 及交戰, 裨將三年山郡高于都刀急擊殺百濟王.

於是, 諸軍乘勝, 大克之, 斬佐平四人·士卒二萬九千六百人, 匹馬無反者.

해석:

관산성에서 백제를 물리치다 ( 554년 (음) )

〔15년(554년)〕 백제왕 명농(明穠)이 가야?[加良]와 함께 와서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하였다.

군주(軍主) 각간(角干) 우덕(于德)과 이찬(伊飡)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혹은 전세가 불리하였다)

신주군주(新州軍主) 김무력(金武力) 이 주병(州兵) 을 이끌고 나아가 서로 맞붙어 싸웠는데, 비장(裨將) 인 삼년산군(三年山郡) 의 고간(高干) 도도(都刀) 가 갑자기 공격하여 백제왕을 죽였다.

이에 여러 군대들이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佐平) 4명과 사졸(士卒) 29,600명의 목을 베었고, 한 필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 <삼국사기> 진흥매금대왕 조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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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武力爲新州道行軍揔管, 甞領兵獲百濟王及其將四人, 斬首一萬餘級.

해석 :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

할아버지 [김]무력(武力) 은 신주도행군총관(新州道行軍摠管) 이 되어 일찍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아가] 백제 왕과 그 장수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을 참수(斬首)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태대각간 열전 상


성왕이 죽다 ( 554년 07월(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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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二年, 秋七月, 王欲襲新羅, 親帥歩騎五十, 夜至狗川, 新羅伏兵發與戰, 爲亂兵所害薨. 謚曰聖.

해석 :

성왕이 죽다 ( 554년 07월(음) )

32년 가을 7월에 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狗川)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성(聖)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성왕 조


百濟(백제) 聖明王(성명왕)의 戰死(전사) ( 554년 12월(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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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

百濟(백제) 聖明王(성명왕)의 戰死(전사) ( 554년 12월(음) ) 

겨울 12월 百濟(벡제)가 下部(하부)의 杆率汶斯干奴(간솔문사간기)를 보내 표를 올려 “百濟王 臣 明(백제왕 신 명)과 安羅(안라)에 있는 倭臣(왜신)들, 任那(임나) 여러 나라의 旱岐(한기)들은 아룁니다. 

斯羅(사라-신라)가 無道(무도)하여 천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狛(박-고구려)과 마음을 함께 하여 바다 북쪽의 彌移居(미어거-みやけ(미야게) : 官家(관가))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신들이 함께 의논하기를 有至臣(유지신) 등을 보내 우러러 군사를 청해 斯羅(사라-신라)를 정벌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천황께서 有至臣(유지신)을 보내시니, (그가) 군사를 거느리고 6월에 왔으므로 신들은 매우 기뻤습니다. 

12월 9일에 斯羅(사라-신라)를 공격하러 보내면서, 신이 먼저 東方(동방)의 領(령)인 物部莫奇武連(물부막기무련)을 보내 자기 方(방)의 군사를 거느리고 函山城(함산성)을 공격하도록 하였는데, 有至臣(유지신)이 데리고 온 백성 竹斯物部莫奇委沙奇(죽사물부막기위사기)가 불화살을 잘 쏘았습니다. 

천황의 威靈(위령-명령)의 도움을 받아 이 달 9일 酉時(서시)에 성을 불태우고 빼앗았으므로 한 사람의 사신을 보내 배를 달려 아룁니다”라고 하였다.

따로 아뢰기를 “만약 新羅(사라-신라)뿐이라면 有至臣(유지신)이 데리고 온 군사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狛(박-고구려)이 斯羅(사라-신라)와 마음을 함께 하고 힘을 합하였으므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竹斯島(죽사도)에 있는 군사들을 빨리 보내, (그들이) 와서 신의 나라를 돕고 또 임나를 돕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또 “신이 따로 군사 만 명을 보내 임나를 돕겠습니다. 

아울러 아룁니다. 

이번 일이 매우 급하여 한 척의 배를 보내 아뢰며, 단지 좋은 비단 2필, 毾㲪(탑등) 1領(령), 도끼 300口(구), 사로잡은 城(성)의 백성 남자 둘과 여자 다섯을 바칩니다. 

(보낸 물건이) 적어 송구합니다”라 아뢰었다. 

餘昌(여창-후에 위덕왕) 新羅(신라)를 정벌할 것을 계획하자 耆老(기로-60이 넘은 노인)가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니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간하였다. 

餘昌(여창-후에 위덕왕)이 “늙었구려. 어찌 겁내시오. 

우리는 大國(대국)을 섬기고 있으니 어찌 겁낼 것이 있겠소”라 하고, 드디어 新羅國(신라국)에 들어가 久陀牟羅(구타모라)에 보루를 쌓았다. 

그 아버지 明王(명왕)은 餘昌(여창)이 행군에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한참동안 잠자고 먹지 못했음을 걱정하였다.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부족함이 많으면 아들의 효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생각하고 스스로 가서 위로하였다. 

新羅(신라)는 明王(명왕)이 직접 왔음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 

이 때 新羅(신라)에서 佐知村(좌지촌)의 飼馬奴 苦都(사마노 고도)에게 “苦都(고도)는 천한 奴(노)이고 明王(명왕)은 뛰어난 군주이다. 

이제 천한 노로 하여금 뛰어난 군주를 죽이게 하여 후세에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얼마 후 苦都(고도)가 明王(명왕)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明王(명왕)이 “왕의 머리를 奴(노)의 손에 줄 수 없다”고 하니, 苦都(고도)가 “우리나라의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奴(노)의 손에 죽습니다”라 하였다. 

(다른 책에는 “明王(명왕)이 胡床(호상)에 걸터 앉아 차고 있던 칼을 谷知(곡지-고도)에게 풀어주어 베게 했다”고 하였다). 

明王(명왕)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 흘리며 허락하기를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구차히 살 수는 없다”라 하고 머리를 내밀어 참수당했다. 

苦都(고도)는 머리를 베어 죽이고 구덩이를 파 묻었다. 

(다른 책에는 “新羅(신라)가 明王(명왕)의 頭骨(두골)은 남겨두고 나머지 뼈를 百濟(백제)에 예를 갖춰 보냈다. 지금 新羅王(신라왕)이 明王(명왕)의 뼈를 北廳(북청) 계단 아래에 묻었는데, 이 관청을 都堂(도당)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餘昌(여창)은 포위당하자 빠져나오려 하였으나 나올 수 없었는데 사졸들은 놀라 어찌 할 줄 몰랐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인 筑紫國造(축자국조)가 나아가 활을 당겨 新羅(신라)의 말 탄 군졸 중 가장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을 헤아려 쏘아 떨어뜨렸다. 

쏜 화살이 날카로워 타고 있던 안장의 앞뒤 가로지른 나무(鞍橋-안교)를 뚫었고, 입고 있던 갑옷의 옷깃을 맞추었다. 

계속 화살을 날려 비오듯하였으나 더욱 힘쓰고 게을리 하지 않아 포위한 군대를 활로 물리쳤다. 

이로 말미암아 餘昌(여창)과 여러 장수들이 샛길로 도망하여 돌아왔다.

餘昌(여창)이 國造(국조)가 활로 포위한 군대를 물리친 것을 칭찬하고 높여 “鞍橋君(안교군)”이라 이름하였다. 

이 때 新羅(신라) 장수들이 百濟(백제)가 지쳤음을 모두 알고 드디어 멸망시켜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한 장수가 “안된다.

日本 天皇(일본 천황)이 任那(임나)의 일 때문에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百濟官家(백제관가)를 멸망시키기를 꾀한다면 반드시 후환을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 <일본서기> 흠명천황(欽明天皇-긴메이 천황 15년)


임진왜란은 조명 연합군이 일본한테 이긴 전쟁이 아니다 ( feat. <명사> 조선열전의 노량해전 내용)

먼저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은 조명 연합군이 이긴 전투가 아니다

[<명사> 에 이런 말이 나오는데...(feat. <명사> 조선열전의 노량해전에 대한 내용에는 명나라 군대가 다 했다고 나오며 이순신이라는 이름은 아에 나오지를 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지 안았다면 중국과 조선이 일본에 이길 가망이 없다라고 나온다)]


[萬曆 二十六年(1598)]十一月, 淸正發舟先走, 麻貴遂入島山·酉浦, 劉綎攻奪曳橋. 石曼子引舟師救行長, 陳璘邀擊敗之. 諸倭揚帆盡歸.

自倭亂朝鮮七載, 喪師數十萬, 糜餉數百萬, 中朝與屬國迄無勝算, 至關死而禍始息.

<十一月,清正發舟先走,麻貴遂入島山、酉浦,劉綎攻奪曳橋。石曼子引舟師救行長,陳璘邀擊敗之。諸倭揚帆盡歸。
 
自倭亂朝鮮七載,喪師數十萬,糜餉數百萬,中朝與屬國迄無勝算,至關白死而禍始息。>

- <明史> 朝鮮列傳

해석:

[萬曆(만력(] 26년(A.D.1598; 朝鮮 宣祖(조선 선조) 31) 11월에 [加藤]淸正(가등청정 – 가토 기요마사) 이 배를 내어 먼저 달아났다.

麻貴(마귀)는 드디어 島山·酉浦(도산, 유포)에 들어갔고, 劉綎(유정) 은 曳橋(애교) 를 공격하여 탈환하였다.

石曼子(석만자 – 시마즈 요시히로) 가 배를 이끌고 [小西]行長(소서행장 – 고니시 유키나가) 을 구원하려 하자, 陳璘(진린) 이 이를 맞이하여 쳐부수어 패배시켰다.

여러 곳의 倭軍(왜군) 이 돛을 달고 모두 돌아갔다.

倭(왜)가 朝鮮(조선)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中國(중국) 과 朝鮮(조선) 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關白(관백 –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죽고서야 禍亂(화란) 이 비로소 종식되었다.

- <명사> 조선열전

그렇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지 안았다면 거지 노예국가 500년 중국의 개였던 이씨 조선은 끝장이 났고 중국 명나라도 불안한 상황이였다

그리고 명나라 군대가 다 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도망자 이순신은 이름조차 안나온다

<-- 이런 도망자 이순신이 그 당시 일본과 명나라에서 유명했다고?

그리고 중국 명나라 왕이 도망자 이순신한테 팔사품을 하사해 줬다고 거짓말을 한 우리나라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입만 열면 선동질임

일본과 동족인 전라왜구 임나 지역의 시험지 문제 (feat. 윤석열 X 파일? 이준석 병역 비리?)

‘윤석열 X파일시험문제 논란 군산 A·교사···전북교육청감사방침” (2021.07.06)

https://news.joins.com/article/24099427

전북도교육청은윤석열 전 검찰총장 및 가족과 관련한 X파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병역 논란을 시험문제 예시로 내 물의를 빚은 전북 군산시 A고교와 교사에 대해 감사를 벌일 예정이다.


‘윤석열 X파일’ ‘이준석 병역 비리’… 시험 문제로 낸 高校 (2021.07.05)

학생·학부모정치 편향비판해당 학교, 재시험 치르기로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1/07/05/NT72EV45H5CQPKANM6IZOKTALA/

최근 교육 현장에서 편향된 역사 인식이나 정치적 주제를 다룬 시험 문제와 강연 등이 잇따르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전북의 한 고등학교 시험에서윤석열 X파일이준석 병역 비리를 예시로 든 서술형 문제가 출제되는가 하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김원웅 광복회장의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발언이 담긴 영상이 문제가 됐다.


전북교육청, 기말시험에윤석열 X파일물은 군산 고교 감사 방침 (:2021-07-06)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002406.html

2학년 문제된 두 문항 6일 재시험 치러

(중략)

이 고등학교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1학기 기말고사를 치렀다.

기간제 교사는 2학년생활과 윤리시험 문제에서 정약용의 <목민심서>, 플라톤의 <국가론>에 근거해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서술하도록 하면서최근 정치권의 윤석열 X파일의 장모와 처’, ‘이준석 병역 비리 등의 쟁점을 염두에 두며라는 단서를 달았다.

논란이 일자 학교 쪽은 재시험을 결정했다.

2학년 학생 68명은 이날 오후 다시 시험을 쳤다.

<-- 일본과 동족인 전라왜구 임나가 한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들어내는 뉴스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