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주와 한국 전주의 연관성 (2011.06.29)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5845
위에 내용을 살짝 한번 알아보자
중국 전주와 한국 전주의 연관성 (2011.06.29)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5845
위에 내용을 살짝 한번 알아보자
1.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
- 조선의 하늘과 땅(천지)은 명(明)나라의 것이고 해와 달은 숭정제(崇禎帝)의 것이다
이것 말고도 이런 말들이 더 있음
<대명일월 소화강산(大明日月 小華江山),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
참고로 숭정제는 명의 16대 왕이며 명나라의 마지막 왕임
그 다음은 남명으로 간간히 이어갔지만 후금 청나라한테 끝내 멸망당함
참고로 <금사> <송막기문> <흠정 만주원류고> 에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가 신라 김씨 왕족들의 후예들이 만주로 넘어와서 세웠다라고 나옴
즉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 김씨 왕족들의 후예들이 성질이 비슷한 반유목민들인 여진족들을 규합해서 세운 나라가 바로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라는 것임
다시 말해서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의 수장들이 전부 신라 김씨 왕족들의 후예들이라는 것임
신라 김씨 왕족들은 흉노족들임 – 문무매금대왕비, 김인문비, 흥덕매금대왕비, 대당고김씨부인묘비등에 다 나옴
2. 재조지은(再造之恩)
- “나라를 다시 만들어 준 은혜” 혹은 “거의 망하게 된 걸 구해준 은혜” 라는 뜻임
다시 말해서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때 망해가던 조선을 명이 군대를 보내 다시 세워준 은혜" 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널리 쓰인 용어임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당시 명나라 군대가 도와주지 안았다면 조선은 망했음
수도 한성을 단 20일만에 함락당하고 함경도 두만강까지 초토화 되고 선조는 도망까지 쳐서 명나라로 망명까지 할려고 했음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때는 더욱 더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갔음
특히 전라도 지역은 그냥 초토화가 되어졌음
이런 상황속에서 명나라 군대가 없었다면 조선은 한달도 채 안되어서 망했음
그런데 그 당시에 조선은 그냥 망해야 했음
하여간 저 재조지은이라는 말은 “임진왜란으로 망해가는 조선을 구원해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명나라 황제들이여” 라는 뜻임
3. 만동묘(萬東廟)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명나라 신종(神宗 - 만력제)을 위해 세운 사당임
임진왜란(분로쿠노에키) 정유재란(게이초노에키) 때 중국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줬다고 세운 사당임
그런데 이 사당을 제사 지낼 때 조선 유림들이 기어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음
그것도 일제시대때까지
그걸 본 일본이 만동묘를 비롯해 숭의묘, 동관묘, 남관묘, 북관묘, 지방관묘 등 모두 폐지시켜 줬음
4. 대보단(大報壇)
- 명나라의 태조·신종·의종을 제사지내던 제단으로, 조선 숙종 30년(1704년)에 창덕궁 안의 금원(禁苑, 비원) 서쪽에 설치하였던 사당임
경기도 가평군 조종암에도 같은 이름의 단(壇)이 만들어져 있음 - <가평 조종암의 대보단과 대통묘>
“빛나는 조선국이 아니었네? (2006.12.13)
조선시대 비석 첫 머리에 새겨진 사대주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79599
그런데 지금 또 중국몽 중국목 이라고 부르짖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있는데…
결론 : 대한민국 남자들은 중국에 대한 노예근성이 아주 강함
http://db.history.go.kr/KOREA/item/compareViewer.do?levelId=kr_036r_0090_0100_0030
원 사신 내치 등이 정동행성에서 왕을 체포해서 압송해가다
甲申 托以告郊頒赦, 遣大卿朶赤·郞中別失哥等六人來. 王欲托疾不迎, 龍普曰, “帝常謂王不敬, 若不出迎, 帝疑滋甚.” 王率百官朝服郊迎. 聽詔于征東省, 朶赤·乃住等蹴王縛之. 王急呼高院使, 龍普叱之. 使者皆拔刃, 執侍從群小, 百官皆走匿, 左右司郞中金永煦, 萬戶姜好禮, 密直副使崔安祐, 鷹揚軍金善莊等中槊, 持平盧俊卿, 及勇士二人被殺, 中刀槊者甚多. 辛裔伏兵, 禦外以助之, 朶赤等卽掖王, 載一馬馳去. 王請小留, 朶赤等拔刃脅之. 王悶甚索酒, 有一嫗獻之.
- <고려사, 세가 권제36, 충혜왕(후)(忠惠王(後)) 4년, 11월>
해석 :
[원 사신 내치 등이 정동행성에서 왕을 체포해서 압송해가다]
갑신 원(元)에서 교사(郊社)를 지내고 사면령을 반포한다는 명목으로 대경(大卿) 타적(朶赤, 도치)과 낭중(郞中) 별실가(別失哥, 베시게) 등 6인을 보내왔다.
왕이 병을 핑계로 영접하지 않으려 하자 고용보(高龍普)가 말하기를, “황제께서는 늘 국왕이 불경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왕께서 나가서 영접하지 않으면 황제의 의심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조복(朝服) 차림으로 교외에서 영접하였다.
정동성(征東省)에서 조서를 듣는 도중에 타적과 내주(乃住, 나이주) 등이 왕을 발로 차고 결박하였다.
왕이 급히 원사(院使)인 고용보를 불렀지만, 고용보는 왕에게 〈도리어〉 욕을 하였다.
원의 사신들이 모두 칼을 빼어 들고 왕을 시종하는 군소(群小)들을 체포하였다.
백관들은 모두 도망쳐 숨었는데, 좌우사낭중(左右司郞中) 김영후(金永煦)와 만호(萬戶) 강호례(姜好禮), 밀직부사(密直副使) 최안우(崔安祐), 응양군(鷹揚軍) 김선장(金善莊) 등은 창에 찔리고, 지평(持平) 노준경(盧俊卿)과 용사(勇士) 2인은 살해되는 등 칼과 창에 찔린 자가 매우 많았다.
신예(辛裔)가 병사를 매복시켜 밖을 방어하며 조력하는 사이에 타적 등은 왕을 부축하여 말 한 필에 싣고 달려갔다.
왕이 조금만 쉬자고 청하였지만 타적 등은 칼을 뽑아 들고 협박하였다.
왕은 매우 괴로워서 술을 찾았는데 어떤 노파가 술을 바쳤다.
- <고려사, 세가 권제36, 충혜왕(후)(忠惠王(後)) 4년, 11월>
어떻해?? 된 것이 중국사인 선비족
고구려의 양원왕도 중국 사신인 최유한테 얻어터지고 허울뿐이였던 고려의 막장 왕인 충헤왕도 원 사신들한테 얻어터지는가??
고려 라는 국호이 데자뷰인가??
무릎꿇은 사람이 아베총리?…'영원한 속죄' 동상 논란 (2020-07-29))
https://yonhapnewstv.co.kr/news/MYH20200729001700641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의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
참으로 유치하기 그지 없음
이런 감성적인 공격으로 일본을 이길 수기 있을까??
절대로 이길 수가 없음
윤치호 왈: 조선인은 10프로의 이성과 90프로의 감성으로 살아간다